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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A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최근 여신 부실 추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지난해 100억원이 넘는 여신에선 부실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반면 비교적 소액인 30억원 이상~100억원 미만 여신에서 전체 부실의 20%가 발생한 탓이다. 무엇보다 30억원 미만 여신에서 나머지 80% 부실이 발생했으며 이 중 10억원 미만 여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자영업자나 영세 중소기업이 불황, 최저임금 인상에 금리상승까지 3중고로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서 수억 단위의 소액 여신에서 부실 발생이 두드러지고 있다. 원리금을 석 달 넘게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늘면서 시중은행의 핵심 수익원이자 '롱테일' 고객군의 부실이 가속화되고 있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종 구조조정 이슈로 부실 여신이 거액에 집중됐다면 지금은 소액 중심으로 나타나는 등 부실 발생 패턴이 달라졌다"며 "금리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일부 소액 차주나 중소기업들 위주로 부실이 발생할 기미가 나타나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몇 년간 저금리로 연명하던 일부 좀비 중소기업과 한계 생활자들의 이른바 '자금 돌려막기'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인상에 취약한 자영업자대출은 되레 급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KB국민ㆍ신한ㆍKEB하나ㆍ우리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지난 23일 기준 179조4157억원으로 1년 전(158조8375억원) 보다 13%(20조5782억원) 급증했다. 지난 1년간 금리인상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운전자금 수요 뿐 아니라 자금 돌려막기용 대출 또한 증가했을 걸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역대 최저 수준의 연체율도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48%로 미국 상업은행(1.82%ㆍ지난해 4분기 기준)의 4분의 1 수준이다. 금리 상승이 본격화되면 저금리에 유지되던 낮은 연체율이 급등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전반적인 연체율 상승의 변곡점이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저금리 상황에서 대기업, 가계보다 연체율이 높은 중소기업 집단으로선 금리 상승기에 버텨낼 체력도 가장 약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최근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역대 최저로 나타나는 등 건전성이 좋지만 이런 지표는 1~2년 후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후행 지표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착시'가 있을 수 있다"며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 한계차주나 한계기업들의 상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기업 도산, 실직, 가계대출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계속해서 금리인상을 늦출 수만은 없다는 점도 은행의 리스크 관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자영업자대출 규제에 나서는 등 대책을 마련중이지만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23일 4대 은행의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8827억원 증가해 3월 증가폭(1조9984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달 26일 소득대비대출비율(LTI),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 규제를 골자로 하는 개인사업자대출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의 효과 때문으로 대출 공급을 막아 돈줄을 틀어쥐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기업 상황은 양호한 반면 개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일부는 한계 상황에 다다를 수 있다"며 "개별 기업의 도산, 실직이 가계대출 부실로 전이될 수 있어 시중은행에 리스크 관리를 특별히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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