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43페이지 제안서 공개
3년전 삼성물산 합병때 완패서 교훈
소액주주·외국인 투자자 설득에 공들여
앞서 엘리엇은 지난 4일 현대모비스(012330), 현대자동차(005380)(회장 정몽구), 기아자동차(000270) 주식 10억달러 어치 보유 사실을 밝히면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방안에 대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엘리엇의 요구는 구체적이지 않았고, 현대차그룹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까지 ‘긍정적’으로 평가한 개편안을 손질할 이유가 없었다. 현대차그룹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엘리엇은 지난 23일 구체적인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제안했다.
엘리엇의 제안서는 외국인 투자가와 소액주주들을 결집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엘리엇이 공개한 ‘현대 가속화 제안(Accelerate Hyundai Proposals)’은 영문과 국문 각각 43페이지로 이뤄졌다. 모듈과 A/S 부품 사업부문을 떼어낸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방안이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하다고 지적하면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통한 지주회사 설립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제안서 곳곳에는 ‘소액주주에 돌아갈 이익’, ‘주주환원을 위한 개선’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 주주결집 실패 교훈 삼아 디테일한 설득
24일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이 디테일한 주주 설득 전략을 펴는 것은 3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당시 주주총회에서 패배한 한 원인이 주주 결집 실패에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법원이 삼성 손을 들어주고,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엘리엇의 시도는 무산됐다. 합병안 찬성률은 69.5%에 달했다. 엘리엇의 완패였다.
엘리엇이 이번엔 개별 기업(삼성물산)보다 기업집단(현대차그룹)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기업보다 그룹이 중요한데, 3년 전 엘리엇은 재벌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당시 실패를 교훈삼아 이번엔 좀 더 치밀한 전략을 짰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합병에는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은 30.2%다. 외국인 투자가 지분율은 48.4%에 달한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때처럼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캐스팅보트를 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번에도 엘리엇의 승산은 크지 않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1조원 규모의 주식을 갖고는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이나 소액주주를 결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결국 주가·배당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
엘리엇은 소액의 지분 ‘알박기’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한 후 ‘먹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겉으로는 ‘주주자본주의’를 내세워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단기 시세차익이 목적이다.
엘리엇은 2016년 10월 ‘삼성전자 가치증대를 위한 제안사항(Samsung Electronics Value Enhancement Proposals)’을 발표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을 이끌어냈다.
엘리엇은 이번에 현대차그룹에 보낸 제안서에서 이 사례를 ‘한국 시장과 기업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주주가치를 향상시킨 성과’라고 자랑했다.
이번에도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뒤흔들기보다 주가 부양과 배당 확대를 통한 이익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엘리엇은 제안서에서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의 배당률(현금배당+자사주 취득)을 각각 글로벌 경쟁사 기준과 맞추기 위해 최소 순이익의 40~5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21%, 25%, 17%에서 각각 2배 가량 높이라는 요구다.
로빈 주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배당을 늘리라는 엘리엇의 제안은 현대차그룹이 할 수 있는 하나의 명확하고 알맞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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