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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광화문]한국전력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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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봄이 왔지만, 한국전력은 아직 겨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푸어스(S&P)는 지난달 한전의 자체 신용도를 ‘BBB+’에서 ‘BBB’로 낮췄다. 세금투입을 의미하는 ‘정부의 특별지원’이 없다면 한전 스스로 빚 갚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한전의 핵심 수익모델은 발전 자회사나 민간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사 와서 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발전단가가 싼 석탄화력과 원자력 비중을 낮추고 발전단가가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비중을 높였다. 석탄과 LNG 가격도 올라 돈을 더 써야 했다. 원가는 뛰었는데 전기요금이 그대로니 수익성이 좋을 수 없다. S&P는 2019년까지 영업현금흐름이 나빠지고 새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등에 대한 설비투자 확대로 ‘빚’이 늘 것이라고 했다.

한전의 경영이 정부의 정책으로 압박받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명박정부는 국제유가가 145달러까지 치솟는데도 물가를 잡겠다며 요금인상을 억제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적자를 메워줬다. 박근혜정부는 누진제 개편에 따른 부담을 한전에 떠넘겼다. 주택용 평균판매가격을 낮추면서 수익성이 나빠졌다. 문재인정부는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펴면서도 요금엔 손을 대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에 영업손실(1294억원)을 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목표주가를 떨궜다. 남북경협 기대감으로 주가는 최근 다소 회복했지만 지난달 말 52주 신저가로 밀렸다. 유가가 70달러를 넘보고 유연탄 가격도 상승세여서 수익성 개선은 기대난망이다.

한전의 상황이 나아지려면 석탄화력과 원자력 비중을 도로 높여야 하나 정부가 정책을 뒤집지 않을 것이다. 신고리 4호기가 가동되면서 지난해 4분기 65.2%로 2013년 이후 최저치였던 원전 가동률이 높아진다. 그래도 연간 71%로 지난해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방법은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인데 전기요금 앞에서 용감한 정부는 없었다. 정부가 하반기 산업용 전기요금을 개편하겠다지만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린다고 수익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에 인상분을 전가해 자칫 물가만 자극할 수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을 건드리는 것은 “5년 내 전기요금을 안 올린다”고 한 정부이니 이 카드를 더더욱 선택할 수 없다. ‘세금’으로 때워 정치적 부담을 더는 게 낫다. 요금과 세금에 대한 체감도나 저항도 다르다. 연료비연동제는 낡고 오래된 레퍼토리지만 그만큼 요원하다.

이런 한전의 처지를 충분히 학습했을 김종갑 신임 사장이 취임사에서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불가피했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구조적인 것들이어서 효과가 적다. “‘공공성’을 추구하되 ‘원가효율성’이 있어야 하고, ‘주주이익’을 도모하되 ‘국가이익’에도 부합해야 한다”는 김 사장의 발언은 레토릭에 그칠 수 있다. 공공성과 원가효율성, 주주이익과 국가이익은 ‘구조적으로’ 충돌하는 개념이며 ‘조화’와 ‘균형’은 말하긴 쉽지만 실현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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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반도체 치킨게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함께 덮친 하이닉스 사장 시절 임원을 자르고, 임금을 깎고, 무급휴가를 보내고, 복지를 줄인 전력이 있다. 지난 10여년간 공기업을 ‘선진화’ 또는 ‘합리화’하겠다며 한전 CEO(최고경영자)들이 효율성을 추구한 것보다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에 따라 전력구입비가 달라지고 전기요금도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를 둔 채 내부의 ‘구조’조정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영적 판단과 정무적 판단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한전의 겨울은 더 길어질 것이다. 김 사장의 ‘슬기로운 CEO생활’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건승을 빈다.

강기택 경제부장 acek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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