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정부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시험 도입한 실업자 대상 기본소득 보장제를 내년 1월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막대한 재정 부담에 비해 실업률 개선과 소득불평등 완화 등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BBC 등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는 23일(현지시간) 사회보장국(KELA)이 기본소득 보장제 확대를 위해 요청한 예산 확충을 거부했다. 기본소득의 설계자인 KELA 올리 캉가스 박사는 “정부에 4000만~7000만 유로(약 526억 1800만~920억 8150만원)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거부됐다”고 밝혔다. 기존 기본소득 지급도 올해 12월을 끝으로 중단하기로 했다. 이번 실험의 결과는 2019년 말 이후에 공개된다.
핀란드 정부는 지난해 1월 기본소득보장제를 도입한 뒤 25~58세 실업자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매달 560유로(약 74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2년간 시험 운영한 뒤 대상을 소상공인, 저소득층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었다. 이 실험은 빠르게 자동화하고 있는 노동시장에서 국민을 보호할 안전망을 만들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조건 없이 지급돼 실업급여 중단을 이유로 저임금 노동을 포기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는 시행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기본소득 보장제의 기대한 효과를 입증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 2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핀란드의 기본소득 제도가 비용은 많이 들면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OECD는 핀란드가 기본소득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득세를 30%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산층 이상에도 기본소득이 지급됨에 따라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율도 11.4%에서 14.1%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핀란드 의회는 지난해 12월 법을 개정해 실업자가 최근 3개월간 18시간 이상 일하거나 직업훈련을 받았을 때만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취업 및 구직 활동과 수당 지급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역소득세 정책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책은 일정 기준 이하로 소득이 떨어질 경우에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재무장관은 기본소득 실험을 끝낸 뒤 도입할 대안 복지제도로 영국에서 시행되는 ‘유니버설 크레디트’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OECD도 보고서에서 기본소득보다는 ‘유니버설 크레디트’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핀란드에 조언했다. 유니버설 크레디트는 기준에 따라 일부 대상자에게 월 일정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본소득 보장제가 증가시키는 빈곤율을 9.7%로 낮추면서 복잡한 수당 제도를 간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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