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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11년前 `퍼주기 논란` 안돼…경협도 비핵화 단계별로 맞춰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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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경제공동체 만들자 ①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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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말인 2007년 10월 4일. 한반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10·4 남북정상선언'에는 백두산 관광과 한강 하구 공동 이용 등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합의가 많았다. 하지만 이듬해 이명박(MB)정부가 출범하면서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됐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던 2006년 1차 핵실험을 단행했던 북한은 MB정부 이후 2차 핵실험(2009년)에 이어 천안함·연평도 도발(2010년)로 한반도에서 평화의 기운을 몰아냈다. 결국 2000~2007년 급진전했던 남북 경제협력은 '퍼주기' 논란만 남긴 채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 때문에 북한 비핵화라는 시대사적 과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남북경협을 과거 방식대로 재개하면 문재인정부의 남북경협 구상인 '한반도 신경제지도'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 없이 혈세만 날릴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한반도에서 중국과 러시아로 이어지는 'H'자 모양의 경협 벨트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10·4 남북정상선언 당시 나온 개성공단 1단계 완성 및 2단계 개발 착수, 해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역 설치, 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과 유사한 콘셉트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 북한이 2010년에 밝힌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의 서남방면(남포~평양~신의주)과 동북방면(나선~청진~김책) 양대축 개발과도 유사하다.

전문가들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성공을 위해서는 북한이 남북, 미·북정상회담 협상장에 나서게 된 배경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 경제는 김정은 취임 이후 2012~2016년 연평균 1.24% 성장해 이전 5년 0.26%에 비해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2016년에는 무려 3.9% 성장해 1999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2016년 5월 노동당 7차 중앙위원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2016~2020년)'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야심 찬 계획은 작년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위기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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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수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중 수출액은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티다가 사회주의 체제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끈 것이란 분석이다.

따라서 앞으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진행되고 자연스레 경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북한의 비핵화와 긴밀히 연계돼야 하는 배경이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정상회담과 미·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큰 틀의 경협 구상도 같이 가야 한다"며 "북한이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할 경우 경제제재가 어떤 수준으로 완화되고, 이에 맞춰 경협을 어느 정도까지 진행할지 로드맵을 서둘러 짜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으로서는 비핵화가 2013년부터 정권의 명운을 내걸고 계속한 핵·경제 병진정책을 포기하는 '채찍'인 만큼 이에 상응하는 '당근'인 남북경협이 단계별로 차근차근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핵화 초기에는 미국 대북제재하에서도 어느 정도 허용된 남북 철도 연결과 도로 개·보수 등을 진행하는 한편 통행·통신·통관 등 이른바 '3통 문제'에 대한 논의를 빠르게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개성~평양 철도는 시속 40㎞를 낼 정도로 낙후됐다"며 "기본적인 인프라스트럭처가 깔려야 경협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가장 마지막에 대북제재 리스트에 넣은 북한산 섬유 수출 전면 금지와 미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하는 북한 노동자 고용 금지 제재가 풀리면 단순 임가공 협력 분야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가동 재개도 이때 시작될 수 있다. 이후 미국 정부가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전 세계 모든 은행을 제재)을 해제한다면 광물 수출길이 풀리면서 자원 개발 등에서도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단계적 비핵화·단계적 경협 주장에 따르면 북한 비핵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고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모두 풀릴 경우에만 한반도 신경제지도 초안에 담긴 서해안 경협축, 동해권 에너지벨트, DMZ 관광벨트 구상이 완성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비핵화·평화체제·경협은 모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조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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