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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불가촉천민에 성역 허락한 힌두사제…"신앞에 모두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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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유명 사찰 수석성직자, 달리트 무동 태우고 사원 들어가

전설 속 장면 재현…함께 종교 의식도

연합뉴스

불가촉천민 아디트야(왼쪽)와 포옹한 힌두사제 CS 란가라잔. [AF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인도 최하층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달리트)은 영어로는 '언터처블'(untouchble)로 번역된다. 만질 수 없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인도인들은 수천년간 이들을 불결하다고 생각했다. 접촉하거나 그림자만 스쳐도 오염된다고 여겼다. 심지어 불가촉천민이 만진 그릇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달리트는 카스트제도의 최하층인 수드라에 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학교나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시체 처리, 오물 수거 등 다른 계층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이들에 대한 차별은 1955년 법률로 금지됐다. 대학교 입학이나 공무원 임용에는 이들에 대한 쿼터까지 배정됐다.

요즘에는 불가촉천민 대신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리트'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다. 인도 정부는 이들을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로 부르며 배려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달리트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은 오늘날 인도 사회에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도 달리트에 대한 집단 테러나 학대가 종종 빚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달리트를 무동 태운 채 성전에 들인 힌두교 고위 성직자가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20일(현지시간) 관련 사연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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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촉천민 아디트야를 무동 태운 힌두사제 CS 란가라잔(가운데 아래쪽).[AFP=연합뉴스]




사연의 주인공은 CS 란가라잔이라는 힌두 성직자와 달리트 아디트야다.

CS 란가라잔은 아디트야에게 그간 달리트에게 제대로 허용되지 않던 성전 내 성소(聖所)를 허락한 것은 물론 무동까지 태운 채 성전으로 들어갔다.

란가라잔은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의 유명 힌두 사원 칠쿠르 바라지의 수석 사제다.

란가라잔은 "신의 눈으로 볼 때는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디트야도 "달리트에 대한 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런 것들은 사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종교 경전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란가라잔이 이날 아디트야를 무동 태운 것은 힌두사제와 달리트에 얽힌 전설을 재현하기 위해서였다.

란가라잔은 앞서 지역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과 달리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이 전설을 소개했다.

전설에 따르면 독실한 힌두 신자인 한 달리트가 사원에 들어가려다가 쫓겨나면서 사제가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렸다. 그 사제는 돌아서서 사원에 들어갔는데 성상(聖像)이 피를 흘리는 것을 발견했다.

크게 깨달은 이 사제는 그 달리트를 어깨에 올려 태우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이 달리트는 성인으로 숭배되고 있다.

란가라잔이 이런 내용을 전하자 달리트 학생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요즘에 그렇게 할 힌두 사제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란가라잔이 전설 속 장면을 따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란가라잔은 "다른 이들도 나 같은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달리트가 성전에 들어와서 함께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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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촉천민 아디트야(왼쪽)와 종교 의식에 참여한 힌두사제 CS 란가라잔.[AFP=연합뉴스]



실제로 란가라잔과 아디트야는 성전에서 나란히 종교의식에 참여했다.

달리트 출신 인권운동가인 밤사 틸라크는 "달리트에 대한 그런 불평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 일은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동이 아니라 실은 친절과 너그러움"이라며 "우리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도의 달리트 수는 2억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c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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