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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MT리포트]한국 금융은 '약탈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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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편집자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약탈적 대출’을 비판하고 2금융권의 고금리 개선방안을 지시했다. ‘약탈적 대출 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국내 금융권이 정부 인식 대로 약탈적인지 살펴봤다.

[금융은 약탈적인가]<1>과잉대출 유도하는 금융권..채권자 책임 키우고 채무자 권리 강화 추세로 전환

'약탈적 대출'이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월가 점령 시위를 벌이면서 '약탈적 대출'이 금융사의 과도한 탐욕을 비판하는 일반적 용어로 자리잡았다.

이후 국내에서도 금융권의 과도한 채권추심 등을 비판하며 '약탈적 대출'이란 용어가 사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금융사의 과도하거나 불공정한 '약탈적 대출' 규제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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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보다는 '과잉' 대출= '약탈적 대출'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1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무엇이 약탈적 대출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일관된 정의 또는 어떠한 대출이 약탈적인 성격에 속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기재돼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탈적 대출에 대한 규제를 정립한 미국의 경우 '기만적·사기적 대출'로 규정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공격적 판매전략을 통해 소비자를 속이거나 계약조건에 무지한 소비자의 상태를 불공정하게 이용하는 기만적이거나 사기적인 대출"로 정의했다.

금융권에선 과도한 대출금리를 부과하는 대부업체 등 일부 2금융권을 제외하고 한국 금융권 전체를 '약탈적 대출'이라고 싸잡아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못 갚을 것을 알면서 악의적으로 빚의 수렁에 빠뜨리는 것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볼 때 일부 대부업체를 제외하고 제도권 금융을 약탈적 대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시각도 비슷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취임사에서 언급한 '약탈적 대출'은 일부 2금융권을 지적한 것"이라며 "은행 대출은 거의 완전경쟁이라고 할 정도로 경쟁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과잉대출의 문제는 있다고 본다. 금감원은 지난해 작성한 내부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약탈적 대출로 보기는 어려우나 과잉대출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무제한 신용공급의 유혹, 과잉대출= 과잉대출은 상환능력을 넘지는 않지만 '불필요한 대출을 권유'하거나 아예 '상환능력을 넘어서는 대출'을 의미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지난해 나이스(NICE)평가정보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100%를 넘는 채무자는 118만명에 달했다. DSR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1년간 갚아야할 원금과 이자가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많다는 의미다. 상환능력을 넘어선 과잉대출이다.

과잉대출은 금융회사 입장에선 늘상 노출돼 있는 유혹이란 점에서 구조적인 문제다. 제조업체가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는 것처럼 금융회사는 대출을 많이 해야 수익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있지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같은 경우는 그런 리스크가 거의 없다. 대출자가 대출을 갚지 못하면 주택을 경매로 넘겨 회수하면 된다. 금융회사는 그 과정에 드는 비용까지 감안해 통상 대출금액의 110%까지 담보권을 설정한다. 은행들이 주담대 확대에 열을 올려온 이유다.

게다가 담보인 주택가격 하락의 리스크는 모두 채무자의 부담이다. 주택가격이 대출액 밑으로 떨어져도 채무자는 대출액 모두를 상환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는 공저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에서 주담대에 대해 '가계에 위험을 전가하는 역(逆)보험'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부가 채무자의 상환책임 범위를 담보주택의 가격 이내로 한정하는 책임한정형(비소구) 주담대를 도입했지만 아직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과잉대출한 금융회사도 책임..채무자의 권리 강화= 대출을 갚지 못해 연체자가 되면 다양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당장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높은 연체이자를 부과받는다. 연체된 채권은 대부업체 등으로 팔려가 오랫동안 채권추심에 시달리고 담보였던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일부에선 이같은 시스템 자체를 '약탈적'으로 본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대출을 해주고 과도한 연체이자를 부과하며 가족의 주거권이 달린 주택을 사전조율없이 매각하는 등 대출 부실의 책임을 소비자만 부담하는 구조가 유지돼 왔다"며 이를 시정하기 위한 법률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또 상환능력을 넘어선 대출을 금지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도 국회에 상정돼 있다.

정부도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금융회사의 과도한 대출을 제한하고 채무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진행된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 장기소액 연체채권 탕감 등은 빌려준 금융회사의 책임을 묻는 조치다. 10년 넘게 못 갚았다면 채무자가 갚을 능력이 없다는 의미고 빌려줄 때 제대로 평가해 빌려준게 아닌 만큼 받는걸 포기하란 얘기다.

또 올해부터는 연체 차주의 주택을 처분하기 전에 반드시 차주와 상담하도록 하고 조건을 충족하면 담보권 실행을 최장 1년간 유보해주는 등의 연체 차주 보호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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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기자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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