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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if] 과학이 된 종이접기… 몸속부터 우주까지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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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화분을 들추면 꼬리에 집게가 달린 벌레가 쏜살같이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집게벌레다. 축축한 곳을 좋아하고 숨기를 잘해 땅에만 붙어 살 것 같지만 아주 가끔 위기에 빠지면 작은 날개를 펼쳐 날아간다. 보잘것없는 작은 벌레가 과학 발전에 도움을 줬다. 지난 23일 미국 퍼듀대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공동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집게벌레가 종이접기 원리로 날개를 10분의 1 부피로 접는 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모방한 인공 집게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사랑 고백을 위해 종이학을 접던 기술이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곤충의 날개처럼 힘들이지 않고 접었다 펼 수 있는 로봇팔에서부터 몸속을 돌아다니며 상처를 치료하는 의료용 로봇과 우주정거장의 태양전지에까지 종이접기 기술이 들어가고 있다.

◇곤충 날개 모방한 인공 집게

종이접기는 영어로 '오리가미(ori gami)'라고 한다. 종이접기 공예가 발전한 일본어에서 딴 이름으로, 일본어로 '접다(오리)'와 '종이(가미)'를 합친 말이다. 종이를 접어 골과 마루 구조를 만들어 원하는 입체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자연에서도 종이접기를 찾을 수 있다. 식물의 싹을 보면 나중에 잎 표면의 골과 마루가 된 선들을 따라 차곡차곡 접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딱정벌레들이 속날개를 겉껍질 안에 접어 숨기는 데에도 종이접기 원리가 적용된다. 하지만 집게벌레 날개에 나있는 선들은 수학적으로 평면 물질에서 종이접기를 하기에 불가능한 형태였다. 뭔가 다른 요인이 있어야 했다. 미국과 스위스 연구진은 '레실린'이란 탄성 단백질의 압축력이 날개를 펼치고 접는 데 일종의 빗장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레실린을 당기면 빗장이 풀리며 날개가 펴지고, 레실린에 가해진 힘을 없애면 용수철이 당겨지듯 순식간에 날개가 접힌다.

연구진은 집게벌레를 모방한 인공 날개 구조도 만들었다. 플라스틱 판들을 탄성을 가진 물질로 이어 붙였다. 탄성 물질을 누르면 날개가 펴지고, 탄성 물질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순식간에 접혔다. 연구진은 날개 구조가 물체를 집는 집게로도 쓸 수 있다고 기대했다.

◇400배 무게 견디는 가제트 팔

오리가미 로봇도 개발되고 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지난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압축 길이보다 17.5배로 늘어나고 제 무게의 400배까지 견딜 수 있는 로봇 팔을 만들어 드론에 장착했다"고 밝혔다. 만화영화에 나오는 가제트 형사의 로봇팔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드론은 로봇팔을 늘어뜨려 공중에서 잘 보이지 않던 곳을 촬영할 수 있다.

조 교수는 "종이접기는 간단한 형태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고, 다리의 V자 구조처럼 형태를 바꿔 이전보다 큰 힘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계 장치에 쓰려면 자동으로 접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접히는 부분마다 일일이 모터를 달 수도 없다. 형상기억합금을 붙이고 열을 가해 접는 방법도 나왔지만 열로 인해 재료에 손상이 갈 수 있다.

조 교수는 로봇팔 전체를 모터 하나와 와이어로 해결했다. 와이어를 풀면 플라스틱 판에 붙어있는 자석들이 서로 붙으면서 육면체 구조를 만들었다. 와이어를 당기면 자석이 떨어지면서 납작하게 접혔다. 조 교수는 "평면들이 수직으로 맞닿아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의 한국인 과학자인 이기주 교수도 지난해 오리가미 로봇팔을 만들었다. 역시 와이어를 감거나 풀어 로봇팔을 펼치고 접었다. 손가락 역할을 하는 구조물도 종이접기 방식으로 만들었다.

다니엘라 러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지난달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게재한 논평 논문에서 "종이접기 원리를 이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며 "프린터로 평면형 로봇 부품을 찍어내고 빛이나 온도, 습도 등 외부 자극에 따라 자동 조립되도록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기주 교수는 "종이접기 로봇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얇지만 튼튼하고 잘 접어지는 재료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질병 치료·우주개발에도 활용

종이접기의 무대는 다양하다. 미국 일리노이대와 조지아공대, 일본 도쿄대는 2015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종이를 지그재그 형태로 접고 붙여 튜브 구조를 만들었다. 이 튜브들을 붙이면 골과 마루가 서로 맞물리면서 튼튼한 구조물을 이뤘다. 이 기술은 재난 현장에서 비상 교량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다니엘라 러스 MIT 교수 연구진은 몸 안을 돌아다닐 오리가미 로봇을 만들었다. 작은 얼음 캡슐 안에 종이접기로 로봇을 접어 넣었다. 환자가 캡슐을 삼키면 위에서 얼음이 녹고 접혔던 로봇이 펼쳐진다. 로봇의 홈이나 표면에 부착된 약물로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내장된 자석은 실수로 삼킨 수은 전지에 달라붙어 같이 몸 밖으로 배출될 수 있다.

종이접기는 우주 화물의 부피를 줄여 우주개발비를 절감할 수도 있다. 국제우주정거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전지판이 대표적이다. 미국 브리검 영대 연구진은 종이접기 기술을 적용해 태양전지판을 곤충의 날개처럼 9분의 1로 압축하는 데 성공했다. 상용화되면 지구에서 가져간 2.7m 태양전지판이 우주에서 25m 길이로 펼쳐질 수 있다.

 



조선비즈

/ 그래픽=김충민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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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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