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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차장 칼럼] 개헌정국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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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 회견을 비롯해 몇 차례 개헌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개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이해했지만 현재 국회 의석 구조상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봤다. 국회 선진화법에 막혀 법안 하나 통과시키기도 쉽지 않은데 개헌이 가능할까 싶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조국 수석이 3일 연속 청와대 춘추관에 나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브리핑하는 것을 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개헌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국 수석의 설득력 있는 브리핑이 인상적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게, 현 정권을 곱게 보지 않는 보수 신문의 대표적인 논객조차도 ‘내 눈에는 그럴 듯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긍정평가가 64%(리얼미터 조사)가 나온 데는 조국 수석의 브리핑도 한몫했다고 나는 본다. 대통령 지지율이 70%가 넘게 나올 때도 개별 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최소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지만 대통령 개헌안은 논쟁이 될 만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음에도 대통령 지지율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등은 조국 수석이 개헌안을 브리핑한 것을 두고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청와대 일개 비서’가 했다고 폄훼하지만 ‘일개 비서’에 맞설 만한 현역 의원 한 명 없는 게 제1 야당의 현실이다. 민정수석이 TV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개헌의 당위성을 이야기했으니 야당에서는 종편이라도 나가 그 부당성을 설득력 있게 알려야 하지만 종편에 내보낼 대표선수 한 명 고르기가 쉽지 않다.

논리로 안 되니 할 수 있는 것은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이다. 한쪽에서는 정연한 논리로 필요성을 이야기하는데 반대편에서는 막말로 대응을 하니 상대가 될 리가 만무하다. 이것도 대통령 개헌안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게 나온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대통령이 26일 개헌 발의를 했으니 조국 수석 표현대로 이제는 ‘국회의 시간’이다.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개헌안을 도출하면 대통령 개헌안은 철회하겠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지만 여야 합의 개헌안이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은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116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국민의 64%가 지지하는 개헌안이 부결됐을 때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 지가 관전 포인트다. 여당에서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뜻에 반해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때와 비슷한 민심의 후폭풍을 기대하고 있다. 야당은 지금의 행정 비효율을 초래하는 걸 막을 수 있었던 ‘세종시 수정법안’을 국회에서 무산시키고도 큰 탈 없이 지나갔던 일을 떠올릴 것이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치부 차장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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