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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네고시에이터' 문대통령, 오늘 개헌안 발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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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심의기간 여야 수싸움 예고
한국일보

4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전달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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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예고대로 정부 개헌안을 발의키로 하면서 정치권이 개헌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고 있다. 헌법이 정한 국회 심의기간인 60일간 여야는 개헌을 놓고 사활을 건 수싸움을 벌여야 한다.

개헌 발의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25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의 입장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한 채 ‘태풍의 눈’으로 진입을 숨죽여 기다렸다.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 역시 장외투쟁 가능성을 시사하며 강력 반발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헌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이라는 시한폭탄을 멈춰 세울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이 어떻게 처리 되느냐에 따라 문 대통령과 각 정당은 물론 헌법기관인 개별 의원들의 정치적 운명 또한 갈리게 됐다.

국회 개헌안 표결 5월 24일 시한…문 대통령 승부수

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회는 더는 개헌 논의를 미룰 수 없게 된다. 헌법 제130조에 따라 국회는 늦어도 60일 이후인 5월 24일까지 본회의를 열어 의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고 협상가’(Negotiator-in-chief)로 불리는 문 대통령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문 대통령의 짊어져야 할 정치적 위험도 크다. 한국당은 물론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까지 정부 개헌안 발의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부터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특히 정부 개헌안이 본회의 표결 끝에 부결되거나, 문 대통령 스스로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경우 국정 운영 동력 훼손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한국당이 반대한다면 현실적으로 정부 개헌안의 국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한국당 의석(116석)만으로도 개헌 저지선인 재적(293석) 3분의 1(98석) 선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이 마지막까지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야당 반대가 큰 만큼 협치를 이유로 피하려 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문제”라며 “6ㆍ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이행한다는 명분이 적지 않다지만 짊어져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보면 개헌 정국의 주도권이 오롯이 야당에만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뒤따를 정치적 책임 문제를 감안한다면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수 싸움은 한층 복잡해진다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가진 최고 무기는 70%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높은 지지율이다. 한국당 등 야당의 개헌 저지가 문 대통령 국정 운영의 발목 잡기로 비춰질 경우 6ㆍ13지방선거에서 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이번 정부 개헌안은 지방분권을 핵심 뼈대로 삼고 있어 야당이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지방선거에서 ‘야당 심판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3일에 걸친 청와대의 개헌안 공개 공세 이후 기본권 확대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점도 야권에는 부담이다. 지지율 측면에서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문 대통령이 주도하는 대형 정치이벤트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대목이다.

국회 주도 개헌 합의 마지노선은 5월 4일

정부 발의 개헌안 처리 과정은 사실상 외길 수순이다. 정부는 26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대통령 개헌안을 심의ㆍ의결할 예정이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를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재가하면 정부 개헌안은 국회에 즉시 제출되며 법률적 의미의 공고가 이뤄진다.

이후부터는 청와대가 강조하는 ‘국회의 시간’이다. 개헌안은 발의 이후 수정이 불가한 만큼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해 5월 24일까지 본회의 의결을 거친다면 6ㆍ13 지방선거에서 동시 개헌 국민투표가 가능해진다.

일각에서는 개헌안 표결이 무기명 비밀 투표가 아닌 기명 투표로 진행된다는 점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당론과 무관하게 개별 정치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정부 개헌안이 국회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상당부분 담고 있는 만큼 의회주의를 지향하는 의원들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인 측면도 있다. 야권에서 이탈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야당들 사이에선 총리 추천권을 고리로 개헌안 처리에 합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국회 연설 권한을 활용해 직접 개헌안 제안 설명에 나서려는 배경이다.

만약 여야가 국회 차원의 새 개헌안 발의에 합의한다면 문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을 자진 철회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면 5월 4일까지는 국회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 이날을 넘겨 국회 개헌안 합의가 이뤄진다면 개헌 국민투표는 지방선거 이후 별도로 치러져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여야가 끝내 개헌 처리와 관련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결을 통해 정부 개헌안을 부결시키는 경우다. 문 대통령이 사실상 정치적 패배를 선언하고 개헌안 발의를 철회해야 하고, 정국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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