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달라진 변화? 글쎄요”…아산병원 간호사 숨진 지 한 달…‘태움’은 여전히 진행 중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시아경제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투' 폭로 이후 달라진 변화? 하루 근무시간 10-12시간 일상다반사…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 신청은 꿈도 꿀 수 없는일…신청 시 돌아오는 말은 ”너가 일을 못하니 수당 쓸 자격 없다“ 일 뿐

#서울 대형병원에 재직 중인 3년차 간호사 A 씨(28)는 '태움' 문화 폭로 이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태움'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동료 간호사들은 오히려 ‘태움’을 빌미로 인신공격을 일삼는다. 또 근무시간이 길고 일의 강도가 높다보니 퇴사가 잦다. 인력이 비는 곳을 신입으로 채워 빠르게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다보니 스파르타로 교육할 수밖에 없고 빠르게 일을 배워야하는 신입은 매일 압박감에 시달리고 결국 퇴사를 결정한다. ‘악순환’이 이어지다보니 ‘태움’은 사라질 수가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 내부의 관행이 바뀌어야한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는 의미의 은어로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임상현장에서 한 치의 실수도 저지르지 못하도록 선배 간호사들이 엄하게 교육하는 과정을 빗댄 말이다. 지난달 15일 고 박선욱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태움’ 문화는 더욱 논란이 됐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간호사들 사이에 만연한 ‘태움’이라는 악습의 피해자였다. 유족과 지인들은 박 간호사의 죽음이 병원 내 ‘태움’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된 업무에 시달린 A 씨는 결국 8급 간호사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8급 간호사 시험은 다른 공무원 시험에 비해 응시생이 적지만 수십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지난해 서울의 경우 경쟁률이 64.9:1 이었으며 경기 군포시는 117.0:1을 기록했다.

아시아경제

간호사연대 관계자들이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앞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사진=연합뉴스


◆'태움'문화의 근본적 문제, 환자를 돌볼 '실질인력 부족'이 원인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태움’ 문화의 원인을 간호 현장 내부에서는 ‘열악한 근로 환경’을 꼽는다. 간호사들은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과중한 업무량과 오랜 근무시간이 겹치면 예민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병원 4년차 간호사 B 씨는 “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들었던 태움 문화는 현장으로 나와보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B 씨는 “급박하고 열악한 근무환경이 여성이 다수인 집단에서 기 싸움과 결합돼 간혹 정신적 가혹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실수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의 경우 태움의 강도가 더욱 강하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다수의 신규 간호사가 입사 후 후임 간호사가 들어올 때까지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하다보니 간호 분야에서 1년차 간호사의 퇴직률은 33.9%에 달한다.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은 간호사들의 높은 이직률로 직결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2016년 보건의료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절반이 면허를 취득하고도 보건의료기관에서 일하지 않고 있다. 2016년 기준 간호사 면허 소지자 35만5772명 가운데 보건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7만9989명(50.6%)에 불과했다. 나머지 49.4%는 일을 쉬고 있거나 다른 직종에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면허 소지자의 현장 근무 비율이 낮다는 것보다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실질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A 씨는 간호사 인력의 수급 문제를 제기하면서 “담당 환자 수를 줄이려면 간호사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간호사 한 명당 환자 15-20명을 보고 있지만 미국 등 선진국은 1명당 4-5명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의료 노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간호사 임상활동인력(의료기관서 간호 제공 인력) 수 평균은 인구 1000명 당 6.8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 당 2.4명으로 낮다.

일각에서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법제화 등을 통해 간호사들의 과도한 업무량을 분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초과근무 수당 신청도 못하는 한국보다는…'복지·연봉'따라 미국간호사 시험 응시 증가 추세

이같은 근무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는 간호사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로 재직중인 2년차 B 씨는 퇴사 후 미국간호사 시험을 준비중이다.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퇴직서를 냈다. B 씨는 데이 출근(새벽 6시)을 하면 이브닝 퇴근(오후 6시)이 일상이다. 또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 청구를 할 수가 없다. ‘너가 일을 못하니까 (초과) 근무 한거다’라는 말을 선배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연장근로 수당 신청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도가 활용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 간호사시험에 응시하는 한국인들은 2013년 482명에서 지난해 749명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배경의 주된 원인으로 현직 간호사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을 꼽았다. 2017년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간호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연장근로 시간은 60분으로, 간호사의 87.9%가 매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

간호사 부족문제 해결을 위해 간호대학 신증설과 정원 확대 역시 매년 계속되면서 간호사 신규 면허자 수는 2006년 1만 495명에서 2016년 1만 7505명으로 66.8%가 늘었다. 하지만 운영 병상 수 급증과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증가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대한간호협회의 설명이다.

대한간호협회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간호사 인권침해 행위 등 유사 사례가 발생했는지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지난해 12월28일부터 1월23일까지 7275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분석 결과 간호사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근로기준관련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태움 반대 배지.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연세의료원 노동조합 제공


환경 개선과 ‘태움’ 문화를 호소하는 간호사들을 위해 대다수 병원은 경력직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의 업무 습득을 돕는 '프리셉터-프리셉티'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제도가 조직 문화 개선에 미치는 효율성은 의문이 제기된다. A 씨는 “프리셉터를 잘못 만나 그만두는 신입 간호사들도 많다. 흔히 프리셉터가 프리셉티를 전담해 6개월 간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곤 한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유지인 조직부장은 “열악한 간호 노동조건의 핵심은 부족한 간호 인력이다. 다수의 간호사들은 ”인력 충원 같은 제도적 해결책, 간호사 간 서로 존중하는 배려 문화의 정착 등이 동시에 정착해야 병원 내 '태움'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황효원 기자 woniii@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