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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닫힌 문호를 여는 남북 경제협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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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북한 거쳐 중국·러시아까지 진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에도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및 군사행동 중단 등의 조치가 앞서야 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상회담을 통한 대화 분위기를 타고 경제적 효과 역시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협력 통로를 다각화해 소통창구를 늘리는 방안에는 남북한과 주변국 모두 각자가 필요로 하는 실리를 챙기는 한편 향후 대화가 벽에 부딪치는 상황이 와도 일방적 단절을 예방하는 보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깔려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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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가 집중되는 쪽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서 핵심적 요소 중 하나인 신북방정책의 성패에 따른 경제효과다. 개성공단 폐쇄조치 이후로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남북경협이 전면중단 상태를 벗어나 재개되기 시작하면 생산유발 및 고용 효과가 중단 이전보다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남북경협에서 남측 정책의 청사진 역할을 할 ‘신경제지도’를 보면 경협의 두 지리적 중심축을 예측해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내놓은 이 구상에서는 개성공단과 평양·남포·신의주를 거쳐 중국 주요 도시까지 연결되는 ‘환서해 경제벨트’와 금강산·원산·단천을 지나 청진·나선을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환동해 경제벨트’가 강조돼 있다.

경협 재개의 물꼬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정상회담 후 경협 재개 역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로 물꼬를 틀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군사분계선까지의 직선거리가 10㎞에 불과한 개성의 위치 때문에 개성공단은 경제협력의 상징이라는 점 외에 양측의 군사긴장을 완화시키는 데도 한몫 했다. 순수하게 경제적 측면만 보더라도 대북제재 최후의 카드 격으로 쓰인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남한도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남북 간 교역액은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된 2015년 27억1400만 달러에 달했지만 2016년 3억3300만 달러로 급감했다. 금강산 관광객 수 역시 관광사업이 전면 중단된 2008년까지 193만4662명에 달했으나 관광 중단 이후 사업이 내던 수익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처럼 경제협력사업은 급변하는 정세에 따라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협상분야에 비해 진척이 더디고 장기적 과제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 안에 열리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사안 역시 빠른 정치적 결단에 좌우되는 군사·안보·외교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3월 15일 청와대가 발표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구성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점도 남북경협이 정상회담의 중심 의제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의 근거가 됐다.

정부도 대북제재의 근본적 이유인 북핵문제에 대한 비핵화 조치가 확실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협부터 추진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표면적으로는 ‘선 비핵화, 후 경협’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도 큰 틀에서 남북경협에 관한 공감대는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 각론은 이후 고위급·실무급 회담에서 드러나는 식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정상회담에서의 경협 논의에 관한 즉답은 피하면서도 “향후 우리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며 “남북경협 기업과 개성공단 기업에 대한 지원 또한 착실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실무적 차원에서는 이미 정상회담 이후를 상정해 경협 관련 조직을 정비하는 등 경협 재개를 위한 준비에 나서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경협 자체가 유명무실한 사업으로 전락하면서 현재로서는 남북경협 사업의 업무범위는 개성공단 철수 기업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크게 축소됐다. 통일부 밖에서는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 남북경제과와 남북경협팀 정도가 남북경협 관련 부서로 남아있는 정도다. 때문에 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를 대비해 ‘통일경제특구법’을 제정하고 단절돼 있는 경원선 구간을 복원하는 등의 업무를 정부가 추진 중이다.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인 만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비롯해 남한 정부가 자체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대북제재 하에서도 경협을 위한 사전조치가 가능한 부분도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남측 기업도 참여한 사업의 특성상 대북제재 예외사업으로 따로 재분류해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남북교류협력 생태계를 복원하는 차원에서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로 남북경협 채널을 복원하는 외에도 대북제재의 틀 내에서 물자교류를 최대한 허용하는 방안도 있다”며 “또 경제분야의 인적 교류와 협력사업 목적의 접촉 및 방문을 허용하는 등의 조치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국 이해관계 조정 협력 유도해야

남북경협이 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및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향후 본궤도에 오르더라도 남측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흘러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남한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남북경협을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의 방편으로 추진하는 것과 달리, 역시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게 될 미국을 포함한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은 북한을 통해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함경남도 단천 일대의 광물자원 개발권을 비롯해 청진항 사용권 등 특히 아직까지 개방이 더딘 동해안 지역에서 주변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진 소지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는 “대내외적 여건이 마련되면 협상을 통해 북한의 자원개발과 연계를 이끌어내 북한 내 인프라 개발의 참여를 높일 수 있고 경쟁국들과의 대결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며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할 사업으로 철도나 도로 연결사업과 함께 무엇보다 자원협력 사업으로 희토류 등 고부가가치 광물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풀어야 하는 남한 입장에서는 이들 주변국이 얽힌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협력을 유도하는 식의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각국이 북한을 두고 경쟁하는 대신 다자협력을 통해 갈등의 소지를 줄이고 북한 개방을 이끌어내는 효과도 더욱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자협력에 적극 참여하여 주도권을 확보하고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한반도까지 확대시키면서 남북경협을 이어가는 한편, 한반도를 역내 평화경제구조에 묶어야 한다”고 제언하면서 “나진-하산 프로젝트 복원, 남·북·중·러 혁신 클러스터 구축사업 등이 다자협력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제에서 이전 체제와는 달리 빠른 시장화가 진척되고 있다는 점도 남북경협에 신중함 못지 않게 속도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내걸고 있는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은 외국자본 유치를 추진하는 한편, 나진·선봉 등 이미 알려진 5개 중앙급 경제특구 외에도 19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도 신설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북·중 접경지대 말고도 서해안과 동해안에 대부분이 자리잡고 있는 경제특구·개발구의 위치상 현 정부의 ‘신경제지도’ 구상과도 상당 부분 겹치는 지역들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 변화 유도를 위해 접근한다는 측면에서도 경제를 수단으로 북핵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경제통일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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