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 울리는 부동산 규제 역설
주택대출 막아 목돈 쥔 사람만 유리
84㎡ 아파트 현금 10억 있어야 계약
청약 경쟁률 123대 1 과천 푸르지오
일반 분양 22% 미계약 매물로 나와
분양을 받으려면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해 전용 63㎡는 7억원, 84㎡는 10억원 가까운 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금을 7억원 이상 들고 있지 않으면 청약해 봐야 소용없고, 자칫 청약통장만 날릴 수 있다. 디에이치 자이 개포가 현금이 많은 부자만의 잔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디에이치 자이 개포의 3.3㎡당 분양가는 4160만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방침에 따라 지난해 9월 공급된 래미안 강남 포레스트 분양가와 동일한 액수로 결정됐다. 이는 주변 시세와 큰 차이가 난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10월 이후 거래된 개포동 일대 3개 단지 분양권 50건의 시세를 조사한 결과 3.3㎡당 평균 4800만원이었다. 래미안 루체하임(일원 현대)이 4600만원, 래미안 블레스티지의 분양권은 최근 3.3㎡당 5300만원에 거래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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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분양 일정이 재개돼도 현금 조달 능력이 약한 무주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에이치 자이 개포의 일반분양 물량은 1690가구다. 이 중 100% 청약가점제가 적용돼 무주택자의 당첨 확률이 높은 84㎡ 이하는 1198가구다. 그런데 전용 84㎡를 분양받으려면 계약금(10%)만 1억3300만원이 있어야 하고 중도금(60%)은 7억9800만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현금 9억3000여만원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목돈을 쥐고 있지 않는 한 무주택자가 전세금 대출이나 신용 대출로 이만한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4가구가 공급되는 118㎡의 경우 분양가는 18억7000만원이다. 중도금만 11억원이 넘는다. 63㎡는 188가구가 공급되는데 분양가는 9억9800만원, 중도금은 약 6억원이다.
하지만 묻지마 청약으로 덜컥 당첨됐다가 분양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계약을 포기하면 향후 5년간 재당첨 제한에 걸리고 아까운 청약통장만 날릴 수 있다. 더욱이 서울 지역은 지난해 6·19 부동산대책 이후 신규 아파트 분양권의 전매가 입주 때까지 전면 금지됐다. 관련 업계에서는 디에이치 자이 개포 청약에 부적격·미계약이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강남구청과 현대건설이 통상 40% 정도인 예비 당첨자 비율을 80%로 늘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양가가 3.3㎡ 2955만원으로 ‘과천의 로또 아파트’로 불렸던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서밋은 지난달 31일 청약을 받아 123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일반분양의 22%에 달하는 128가구가 미계약·부적격 물량으로 드러났다. 현금 조달 능력이 부족한 계약자가 대거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단지는 6일 진행한 예비 당첨자 계약에서도 미분양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9일 잔여분 특별 추첨을 통해 완판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로또 아파트 현상을 막기 위해선 분양가 규제를 완화하고 중도금 대출 규제를 일부 풀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세대주가 아파트 분양을 받을 때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분양아파트와 주변 단지의 시세 차이가 많이 날 경우 분양자에게 국민주택채권을 사도록 하는 채권입찰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분양 이익 일부를 정부가 거둬들여 임대주택 건설 등에 쓰면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 정책이 규제라는 한 방향으로 쏠리면 로또 아파트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며 “정부가 시장 상황을 정밀하게 고려해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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