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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미투]“우리도 권력형 성폭력의 피해자”…남성들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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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등 위계중심 조직 내 성적 가혹행위 심심찮아

직장선 상사가 성적 질문…구조적 문제로 접근 바람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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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대학생 이모씨(25)는 최근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남자인 사장이 “귀엽다”면서 이씨의 성기 부위를 만진 것이다. 이씨는 “너무 수치스러웠다”면서도 “동성끼리 일어난 일을 성추행이라고 항의하기도 민망해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동참하는 남성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난 9일에는 인천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남성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지난해 5월 해당 교수가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교수실로 불러낸 뒤 중요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것이다. 피해 남학생은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학교생활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참았다”면서 “남자도 권력형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폭력적인 남성 중심 조직문화 속에서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을 지배하고 제압하고 군림해야만 남자답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에서는 힘없는 남성 역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성폭력 문제를 그저 여성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권력구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군대, 교도소 등 남성 중심 조직문화가 강한 조직에서는 성적 가혹행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지방의 한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송모씨(33)는 “지난 2월 초 교도관에게 알몸 검신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송씨에 따르면 “교도관이 사무실로 불러내 다른 교도관들이 보는 앞에서 하의를 모두 벗기고, 막대기로 성기를 툭툭 건드렸다”고 했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예비역 해병대 대위)는 “군대에서는 선임병이 후임에게 다른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하라고 강요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면서 “군대나 교도소 같은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에서는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 가혹행위가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일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씨(33)는 거래처 여성 직원에게 성추행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김씨는 “노래방을 갔는데 여성 부장이 허리를 손으로 감고 과도하게 몸을 밀착해 매우 불쾌했지만 분위기상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여성학 박사)은 “남성이 권력을 갖는 조직에서 여성 리더가 여성다움을 표시하면 조직 내에서 리더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여성들은 딜레마에 빠진다”면서 “여성들이 생존하는 방법은 남성들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그런 사고가 날 수 있는 건 맞다”고 분석했다.

남성들도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현실은 각종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남녀 근로자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이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남성 근로자는 25.0%에 달했다. 이들은 직장 상사로부터 부적절한 신체접촉, 자신을 성적대상으로 삼는 음담패설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는데, 가해자 대부분(85.4%)은 남성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30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만 20∼50세 미만 노동자 중 사내 상담창구가 있는 1135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근무환경 실태 조사’에서도 남성 중 성희롱 관련 상담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13.1%에 달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성희롱 문제에 있어서 남성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면서 “조직 내에서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을 상담창구 확산과 예방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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