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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창간 90년 내내 3·1운동 지지…일본 야권연대 넓혀야 정치판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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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 고기소 요지 편집국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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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병 이후 독립과 해방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싸움은 계속돼왔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3·1운동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에도 큰 타격이 됐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괴이한 전통을 갖고 있다. 정부가 비공개 대화를 통해 언론의 협조를 요청하면, 언론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제외되면 일종의 왕따를 당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야합이다. (일부 한국 공무원들이 부러워한다.) 유일한 예외가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이다. 정부의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역으로 일본 정부는 어떠한 보도자료나 취재편의도 아카하타에 제공하지 않는다. 한·일 간의 역사 문제에서도 아카하타는 예외다.

지난달 창간 90주년을 맞은 아카하타는 오랜 역사를 통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지배를 비난해왔다. 내년의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건국대 KU중국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한 고기소 요지(小木曾陽司·63) 아카하타 편집국장을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만나 양국 간 역사 문제 해법과 일본 공산당의 현황에 대해 들었다.

고기소 국장은 “3·1운동 뒤 1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식민지배체제가 붕괴됐다. 또 국민주권, 즉 민주주의 흐름이 강해졌다. 이러한 전향적인 흐름에 3·1운동이 큰 공헌을 했다”고 짚었다. 또 “3·1운동과 연대를 해온 아카하타 역시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

아카하타는 1928년 2월 창간 직후부터 3·1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연대투쟁을 다짐해왔다. 고기소 국장이 이번에 가져온 1931년 3월1일자 35호 사본(사진)에는 ‘3·1 기념일’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연대투쟁을 촉구한 글이 실려 있다. 아카하타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학살했음에도 일본의 무산자계급은 어떠한 항의도 하지 못했다면서 “이러한 부끄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치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구체적인 행동 방식으로 일본 내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은화(임금)’의 일상 요구를 할 것을 제안했다.

한·일 간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아카하타와 일본 공산당이 선택한 방침은 바른 역사를 알리는 작업이다. 아카하타 산하 신일본출판사가 기록한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의 잔혹사를 엮은 책 <우리는 가해자입니다>를 지난해 KU중국연구원에서 한글로 내놓았다.

일본 공산당과 아카하타가 보기에 일본 측은 여전히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 일본 언론도 문제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3년 전) 종전 70주년 기념담화를 발표하면서 러일전쟁을 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은 이를 거의 지적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서는 역사 문제 해결이 필수적인 토대”이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후세에 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양국의 우호도 동북아의 평화도 실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내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종종 제기된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시민사회 내에서조차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피로 현상’을 보인다는 말이 들려온다. 고기소 국장은 “역사를 날조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피로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최근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에 대한 심한 공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타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합의했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도 분명했다. 그는 “양국 간 합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모든 위안부 피해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해야만 해결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는 일본 공산당이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정리한 공식 입장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일본 공산당의 당원이 30만명인 데 비해 아카하타의 유료부수는 113만부이다. 당 수입의 85%를 신문 구독료와 유관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다. 고기소 국장은 당원보다 많은 독자수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아베 내각의 폭주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마그마가 축적돼 있고,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언론은 아카하타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산당은 폭력혁명이 아닌 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한다. 2014년 총선에서 중의원 21석을 얻었던 일본 공산당의 당세는 작년 총선에서 13석으로 다소 줄었다. 하지만 이는 시민·야당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야권 공동후보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야당들이 획기적으로 ‘원전 없는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야권연대를 넓히는 것만이 일본 정치를 바꾸는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호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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