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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사설]대법관 전관 예우 줄인다더니 오히려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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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법원이 선고한 재판 중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수임한 사건이 440건으로 전년보다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참여한 사건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2016년 대한변호사협회가 조사했던 263건보다 177건 더 늘어났다. 대법원은 2016년 대형 법조비리사건인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전관예우 관행을 근절시키겠다며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대법관 출신 상고심 수임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와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은 주심에서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신영철 전 대법관이 지난해 수임한 대법원 사건 중 5건은 근무시기가 겹치는 대법관들에게 배당된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 전 차한성 전 대법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상고심에 변호인을 맡았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사퇴한 바 있다. 전관예우 근절 대책이란 게 헛구호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할 경우 동료 대법관이나 후배 법관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고 때로는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직 대법관이 변호인 명단에 이름만 올려도 판사들이 움찔하고, 도장만 찍어주고 건당 수천만원 이상을 받는다는 건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비싼 돈을 주고라도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를 상고심에 내세우는 이유는 그의 대법원 내 연고를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뻔하다. 1, 2심 때는 빠져 있다가 뒤늦게 변호인단에 들어간 것도 이름값에 기대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최고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해서 돈을 버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은 대법관이 종신직이고, 70세가 정년인 일본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통한다.

전관예우 관행은 범죄와 다를 바 없다. 전직 판사나 검사가 맡은 소송이라고 해서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건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짓밟는 처사다. 시민들의 법감정과 상식에도 어긋난다. 그러나 대법원의 대책은 아직 허술하고 엉성해 보인다. 직업 윤리와 정의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면 법으로 규제할 수밖에 없다. 전직 대법관들의 돈벌이 변호를 막는 입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관 변호사의 수임료를 모두 공개하고, 재판부와 변호인의 연고관계를 밝히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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