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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불구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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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시골 텃밭의 상추, 열무들이/빗방울 속에 이리도/

푸르르게 눈부신 것은/백화점 야채 칸에/

비닐로 염을 한 채 누워있는/야채들처럼/

제 몸매를 자랑하지 않기 때문이리./

뒷밭에 갈라진 토마토가/ 비 개인 하늘처럼 스르르/

입안에서 녹는 것은/전신을 농약에 바르고/

성형수술을 한 과일처럼/

저를 고치지 않기 때문이리./

심지도 않았는데/혼자 돋아나는 돌미나리 향내가/

이리도 눈부시게 피어나는 것은/

깨끗함만을 골라서 자라지/

않기 때문이리라./

세계일보

원은희


백화점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는 상추나 열무보다, 시골 텃밭에서 아무렇게나 자란 상추나 열무가 더 눈부시다. 뒷밭에서 제멋대로 자라 여기저기 터진 토마토가 스르르 입안에서 녹는 것은, 전신을 농약에 바른 과일보다 맛있기 때문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혼자 돋아나는 돌미나리 향내가 향기롭게 멀리 퍼져나가는 것은 돌미나리가 깨끗한 곳만 골라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 사랑과 미움, 슬픔과 기쁨, 추함과 아름다움, 더럽고 깨끗함의 분별과 차별 없음이 불구부정(不垢不淨)이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모두 접고 잠시 내 마음을 바라보자.

시골 텃밭의 상추와 열무들,

뒷밭에 갈라진 토마토,

혼자 돋아나는 돌미나리가 어느덧 내 마음자리에 푸르르게 피어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청정무구한 마음자리에 지극한 평화가 충만하지 않는가!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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