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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대구특집] ‘2ㆍ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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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서면서 4ㆍ19 민주혁명의 도화선
한국일보

1960년 2월 28일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시위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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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2월 28일 경북도청에 모인 경북고 학생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시위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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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1960년 대구지역 학생들이 독재와 부정선거에 맞섰던 ‘2ㆍ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최초의 자생적 시위다. 4ㆍ19 민주혁명의 도화선이 된 이 운동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당시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운동의 주동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ㆍ28 민주운동은 이승만 자유당 장기집권으로 독재 정권의 횡포와 부패가 극에 달한 시대 상황에서 일어난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민주적 저항운동이다. 당시 국민생활은 불법적 인권 유린과 빈곤 등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할 만큼 피폐해졌다.

정권의 부패와 부정으로 민심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 등 장기 집권을 위한 선거부정 음모를 진행했다. 1960년 3월15일 4대 정ㆍ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연설회가 2월28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자유당은 연설회에 시민들과 학생들이 몰릴 것을 우려해 대구시내 공립 고교에 일요등교를 종용했다. 학교는 학기말 시험과 청소, 사은회, 일제고사, 졸업식 예행연습 등을 사유로 등교를 지시했지만 자유당 정권의 간계를 간파한 학생들은 교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학교를 뛰쳐나왔다. 이날 시위에는 경북고와 대구고, 사대부고,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 대구농고(현 대구농업마이스터고), 대구공고, 경북여고, 대구여고 등 대구지역 8개교 학생 1,72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당시 인구 밀집지역인 대구 중앙통과 경북도청,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 당사, 경북지사 관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의 악행을 규탄했다. 다수의 학생이 부상을 입고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학생들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독재에 움츠렸던 언론들도 침묵을 깨고 2ㆍ28 민주운동을 보도하면서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궐기와 시위에 참여했고 4ㆍ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지난달 6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2ㆍ28 민주운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있게 만든 첫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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