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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솔직하고 대담한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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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반성과 치부 드러내고 시장 허용하는 등 대담한 김정은 국제사회에 파격 선보여…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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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1월1일 오전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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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대담하더라.”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으로 1박2일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나 대화한 남측 대표단원의 소감이다.

김 위원장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2012년 노동당 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오르며 부친의 권력을 승계했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여전히 짙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뒤 만난 외국 인사는 일본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인 안토니오 이노키 참의원과 미국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포함해 7차례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외교 사절을 접견한 것은 2012년 8월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처음이었다. 이후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중국, 쿠바, 시리아 등의 대표단을 만났다.

명쾌한 전략적 인식… 매우 이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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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이 3월5일 북한을 방문한 정의용 특별사절단 수석대표와 북한 조선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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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특사로 한 이번 특사단의 3월5~6일 방북으로 그의 성격과 통치 스타일 일부가 드러났다.

김 위원장에 대한 특사단의 첫 평가는 ‘솔직하다’는 것이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특징은 특사단과 나눈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정의용 실장은 3월6일 귀환 후 언론 발표문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특사단을 접견하며,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안보 우려에서 비롯됐음을 분명히 하고, 북-미 수교 등으로 이를 해소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남쪽 정부 대표에게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 이처럼 명쾌한 전략적 인식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김 위원장은 특사단에게 거침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는 문 대통령께서 새벽잠을 설치지 않으셔도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건네기도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 남북이 합의한 6개항 가운데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에 대해 “이제는 실무적 대화가 막히고 북쪽 실무진이 안하무인 격으로 나오면 대통령하고 나하고 직통전화로 이야기하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웃으며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돌이켜보면, 김 위원장의 솔직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이전에도 많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조선중앙TV>에서 방영한 육성 신년사에서 스스로를 반성하는 발언을 남겨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위원장은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 올해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는 말로 인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 사는 한국인들에게 사과와 반성을 하는 최고 지도자의 모습은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수령의 ‘무오류성’에 근거해 유일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 평양 도심인 평천구역에서 고층 아파트가 붕괴되는 대형 사고가 터지자 이에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이런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들은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 시공을 되는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꾼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인명 피해가 났다”고 지적했다. 또 이 아파트 시공사 소속 책임자인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이 지역 주민들 앞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전격 공개했다. 최 부장은 이 사고의 책임을 지고 대장에서 소장(별 하나)으로 강등됐다.

주저 없이 체제 부족함 드러내

이런 모습은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국제사회에 드러나기 전까지 김정일 위원장에겐 ‘은둔형 지도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김정일 위원장 시절엔 북한에서 벌어지는 좋지 않은 일들은 철저히 감추려 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는 ‘폐쇄된 통제국가’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이에 비해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의 치부까지 서슴없이 드러낸다. 김정은 위원장은 통풍을 앓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다리를 절룩이며 걷는 모습이 TV 등을 통해 확인된다. 지난해 1월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강원도 시찰 기록영화에서 김 위원장은 계단을 오를 때 절뚝거렸고, 2014년에도 다리를 끄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최고지도자를 우상화하는 북한에서 이런 모습을 공개한 전례는 거의 없다.

김 위원장은 북한 사회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장면에서도 거침이 없다. 그는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평양 만경대유희장 보도블록 사이에 난 잡초를 직접 뽑으며 관리 부실을 질타했고, 2013년 6월에는 기계공장 혁명사적관 건설 실태를 둘러보며 “한심하다”고 했다. 2014년 4월에는 포병부대 사격훈련을 지도하면서 “싸움 준비가 잘되지 않았다”며 군인들의 형식주의를 문제 삼았다. 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은 “김정은 위원장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과하기도 하고 자신과 북한 체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분명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자신감에 기반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신감에 기반한 솔직함은 때로 파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2월9일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자신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최측근 참모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보냈다. 그리고 김여정 부부장의 손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가 들려 있었다. 또 2월25일 폐회식에는 대남정책 결정의 최고 실권을 쥐고 있는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보냈다.

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방북한 문 대통령의 특사단을 맞이하면서도 파격은 계속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5일 집무실이 있는 노동당 청사에서 특사단을 면담하고 만찬을 나눴다. 노동당 청사는 남쪽 고위 인사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과거 방북한 특사단은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찬을 했다. 면담과 만찬에 소요된 시간도 오후 6시부터 4시간12분이나 됐다. 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한 것 자체가 그간의 관례와 비교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전에는 방북한 남쪽 대표단의 애를 태우다 가까스로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이 이뤄졌다.

북한, 헝가리 체제 전환 직전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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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북 특사단에게 평양 대동강변의 외국 귀빈용 고급 휴양시설인 고방산 초대소를 숙소로 내줬다. 북한 외무성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방산 초대소는 고방산 언덕에 있는 흰색 외벽에 지상 3층, 지하 1층 건물로, 2013년 방북한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 등이 묵었던 곳이다.

이번 ‘평창 라운드’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파격의 정점은 다름 아닌 ‘북-미 정상회담’이었다. 그는 문 대통령의 특사단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기에 만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3월9일 이를 수용했다. 이를 통해 5월 북-미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다.

정의용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한 직후인 8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이 향후 어떠한 핵 또는 미사일 실험도 자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능한 한 조기에 만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이 메시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화답하며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은 대외 관계뿐 아니라 대내 정책에서 더 두드러진다. 대표 사례가 시장의 완전 허용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2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 실태를 보고하면서 종합시장이 439개로, 시장화 정도가 40% 정도 돼 헝가리·폴란드 등의 체제 전환 직전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2년을 맞아 2014년 내놓은 5·30조치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 조치는 시장경제의 확산을 뼈대로 해 공장, 기업, 상점 등에 자율경영권을 준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아닌 개인의 힘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에도 북한 사회가 유지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모부도 처벌하는 모습에 주민 환호

2013년 고모부 장성택 처형도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한국 등 국제사회에선 이 사건 이후 고모부를 처형한 김 위원장을 ‘잔혹한 인물’이라 보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장성택은 북한 주민 편에서 볼 때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가렴주구’의 대표적 인사였다. 한 탈북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장성택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두 체제에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행정부장 등을 맡으며 권력을 쥐고 자신의 배를 불린 인물로 받아들여졌다.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에 등장한 주민들의 환호는 실제 (북한 주민들의) 입장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해 7월 2016년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 132명에게 심층 면접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김정은 위원장을 50% 이상 지지한다’는 응답자가 63.4%에 달했다. 또 ‘북한 정권이 30년 이상 유지될 것’ 이라는 응답자도 28.2%로 가장 많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솔직함과 자신감에 기반한 파격적 정책이 주민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기에 이런 파격은 더 빈번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남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여정 1부부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 부부장은 단순히 선전선동 업무를 넘어 김정은 체제 국정 전반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 부부장은 1990년대 후반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스위스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학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고려호텔 등 일종의 안가에서 프랑스 등 외국인 초빙교사에게 프랑스어와 영어 등 외국어를 배웠다. 이런 경험으로 국제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글로벌 마인드’를 갖췄다는 것이다. 북한에선 여동생에 대한 김 위원장의 사랑이 각별해 그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은 김여정이 유일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일부 분석가들은 김 부부장을 김정은 정권의 ‘이방카’(트럼프 대통령의 딸이자 최측근 참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경공업상을 지낸 김경희라는 여동생이 있었다. 그러나 김여정의 실질적 역할은 고모 김경희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 고위층 출신 탈북민은 “김여정은 고용희(김정은·김여정의 어머니로 제주 출신 재일동포로 알려져 있다)의 세 자녀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영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남자였다면 그가 권력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치적 감각이나 모든 면에서 제일 낫다는 평이었다”고 말했다.

30대 젊은이들이 이끄는 북한

김 1부부장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좋은 덕목을 많이 가진 것으로 보였다는 게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낙연 총리 주최 오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김 1부부장은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주로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집중했다. 나와 다른 입장을 경청한다는 자세는 매우 중요하고 그렇게 파악한 남쪽의 입장이 오빠인 김정은 위원장에게 정확히 전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젊은이인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이 이끄는 북한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게 될까. 4월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대담하고 파격적인 결정이 얼마나 많이 내려질지, 한반도 주변국들뿐 아니라 전세계가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

장용훈 <연합뉴스> 통일외교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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