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여행 판도라] 탑승객 카드값 대신 내는 승무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해 국내 항공사를 이용해 세부를 다녀온 한 20대 여성 A씨의 제보다. A씨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만난 승무원의 전화번호와 통장 계좌번호가 남아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기내 면세품이 발단이다. A씨는 기내 면세점에서 15만원대 양주를 본인 신용카드를 이용해 구입했다. 그리고 사흘 뒤 모르는 번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기내 면세점에서 양주 결제를 도와준 승무원이었다. 당시 결제한 카드가 한도초과라 승인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양주 값을 입금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상공의 비행기는 지상의 카드사와 네트워크가 단절되기 때문에 기내에서는 유효한 신용카드인지 확인한 뒤 카드전표와 영수증을 발급하며, 결제 승인 여부는 지상에서 카드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A씨가 본인의 신용카드 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승무원의 설명대로 양주 값은 카드 한도 초과로 인해 결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A씨가 바로 입금하겠다고 답하자 승무원은 본인의 개인 계좌번호를 건넸다. 회사 정책상 담당 승무원이 개인적으로 결제 금액을 받아서 회사 계좌로 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승무원의 개인 계좌로 15만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것도 주저됐지만 그보다 승무원의 업무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A씨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승무원에게 도리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승무원이 죄송할 일은 아니지 않나.

본래 승무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기내에 탑승한 승객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비행이 끝난 후 발견된 카드 값 미결제분까지 책임지는 일이 과연 승무원이 해야 할 업무일까. 필자가 전·현직 국내 승무원들에게 제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공통됐다. 매번 모르는 사람에게 본인의 개인 신상을 노출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며, 승객이 끝까지 돈을 보내주지 않을 경우 해당 값을 승무원이 지불해야 하는 억울한 일도 잦다는 것이다.

승무원들의 억울한 근무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또 다른 하나로 '대기근무'를 들 수 있다. 대기근무란 불가피한 상황으로 비행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승무원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또 다른 승무원이 비행 준비를 완료하고 자택이나 공항에서 대기하는 일을 말한다. 대기근무자들은 모든 비행 준비를 마치고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호출을 대기하지만, 불리지 않을 경우 단 1원의 수당도 받지 못한다.

이 같은 승무원들의 근무가 필자만 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 외항사의 경우도 알아봤다. 두바이 에미레이트항공은 승객이 내린 뒤에 발생한 면세품 관련 문제는 사내 면세담당 부서가 일괄 책임지며, 호출받지 못한 대기근무는 4시간가량의 비행 수당을 받는다. 국내 항공사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구조다.

승무원들의 비행 업무가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매우 고된 일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는 승무원들이 직업의식을 갖고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승객이 그들에게 안전과 서비스를 마땅히 요구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그들에게 먼저 마땅한 업무를 할당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행 관련 이슈를 전방위로 다루는 '여행 판도라'는 여행+ 소속 기자와 작가들이 직접 목격한 사건·사고 혹은 지인에게 받은 제보를 바탕으로 꾸려집니다. 독자 참여도 가능합니다. 공론화하고 싶은 이슈를 비롯해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나 꼭 고쳐야 하는 관행, 여행 문화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김수민 여행+ 작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