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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주도권 다시 쥔 기재부와 금융위 '명분없는 지원 불가'...한국GM 금호타이어 영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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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기업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
‘밑빠진 독에 물 부을 수 없다’...금융논리에 다시 힘실려

8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서울 정부종합청사 19층 영상회의실에 뜻밖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부처 장관들의 회의에 직접 참석한 것이다. 대통령의 참모인 청와대 경제수석이 공개회의에 참석해 부처 장관들과 정책 논의를 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성동조선해양의 법정관리행(行)과 STX조선해양의 고강도 인력감축 등이 결정됐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발표한 이후 첫번째 기업 구조조정 사례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할 때만해도 이들 부실 중소 조선사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구조조정 논의가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금융권에선 정부가 정치 논리에 밀려 구조조정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훨씬 높다’는 채권단의 경영실사 결과가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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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산업경쟁력강화 장관회의에 참석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가운데). /사진=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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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여러가지 컨설팅을 통해 성동조선 등의 회생방안을 검토했지만 금융지원을 계속한다고 해도 살아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면서 “홍장표 수석이 이날 장관회의를 참석한 것은 김동연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수립한 구조조정 방안을 청와대가 수용하겠다는 점을 시장에 확인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기업 구조조정 등 당면한 경제현안을 김동연 부총리 등 경제팀 중심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경제정책을 이끌어가는 김 부총리의 리더십이 한 층 더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기재부·금융위, 구조조정 주도권 쟁취

정부 안팎에서는 성동조선의 법정관리 신청 결정에 대해 기업 구조조정 정책의 주도권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넘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진 이후 산업정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기능 조정과 인수 합병을 통한 존속에 무게감을 뒀고, 기재부와 금융위는 청산쪽에 기울어져 있었던 채권단의 판단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대립구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됐고, 기업 구조조정에 산업적 특성을 반영하겠다는 기조가 제시됐을 때에는 산업부의 입장이 기재부와 금융위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성동조선과 STX조선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이날 산업경쟁력강화 장관회의 결과는 산업적 특성을 반영하겠다는 기조가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을 수 없다’는 금융 논리를 압도하지 못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법정관리 신청이 결정된 성동조선은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에 2조5000억원을 빚지고 있지만,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연속 손실로 1조3000억원의 적자가 쌓였다. 자본잠식 상태다. 반면 수주잔량은 5척에 불과할 정도로 일감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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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관계자는 “성동조선의 생산 가능 선종, 기술적 경쟁력, 수주 현황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금융지원을 계속한다고 현재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됐다”면서 “조선산업 생태계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겠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회생 가능성이 낮은 성동조선을 계속 끌고간다면 대한조선 등 그나마 상황이 괜찮은 다른 중소 조선사들의 성장이 가로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내세우는 ‘조선산업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현재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기재부와 금융위의 관점이다. 이들 부처는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원칙이 부실기업을 연명시키겠다는 신호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다는 원칙은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과 관련 산업 위축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가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의미”이라면서 “대량 실업이 우려된다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연명시키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 앞에 손 벌린 한국GM·금호타이어…"명분·근거 없는 지원 불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기업 구조조정 과제는 조선업 외에도 한국GM과 금호타이어, 현대상선, 대우건설 등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번 성동조선과 STX조선 구조조정은 당장 3월 안에 어떤 형태로든지 결단이 필요한 한국GM과 금호타이어에 ‘명분과 근거없는 자금지원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장 지난달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고 정부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인 미국 GM과의 한국GM 정상화 논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GM은 3조원의 신규자금 투자와 3조원의 기존 차입금 출자전환 등을 제시하며 “2월 혹은 3월 중순에 신차배정을 결정할테니 정부는 지원 여부를 결정하라”는 압박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일자리 확충을 가장 중요한 국정기조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가 한국GM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군산공장 폐쇄 발표 직후만 하더라도 GM측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날 장관회의 전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GM이 정한 협상 시한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한국GM에 대한 불투명한 자금운영과 부실원인에 대한 파악이 먼저라고 선을 그었다. 또 GM이 요구한 산업은행의 자금지원은 신규투자에 국한된 것이라고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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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부평공장 /사진=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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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에서는 GM이 한국에서 철수 결정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일자리 유지를 위해 명분없는 자금지원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아무리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원칙과 명분 없는 자금지원은 향후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GM이 한국GM에 철수 결정을 내려도 이를 돌릴 마땅한 협상카드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현재 분위기로는 청와대나 정부, 국책은행 모두 명분없는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달 안에 법정관리 여부가 결정되는 금호타이어의 상황도 마찬가지다다. 산업은행은 이달 중 금호타이어 노사가 임금축소, 무쟁의·무분규 등의 자구안이행 협약서(MOU)를 체결하지 못할 경우 법정관리에 넣겠다고 통보했다. 노사가 MOU를 체결하면 중국계 타이어기업 더블스타가 약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금호타이어의 최대주주로서 경영을 맡게 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매각을 반대했던 광주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목소리는 금호타이어의 실상이 공개된 이후 잠잠하다. 금호타이어의 존속가치는 4600억원으로 청산가치 1조원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청산하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뜻이다.

정부와 청와대도 더블스타 인수 외에는 금호타이어 정상화 방도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금호타이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남은 자산 중 매력도가 높은 미국 조지아공장, 중국공장 등은 헐값에 글로벌 타이어 업체나 자동차 업체가 인수해갈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국내 공장은 청산되고 대규모 해고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김형민 기자(kal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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