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시행 전 용역 업체와 계약해야 기존 기준 적용…적기 놓쳐
애써 추진해도 엄격한 기준 통과 못하면 용역비 1억~2억원 날릴 판
[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안이 5일부터 시행되면서 안전진단 용역 업체를 선정하지 못한 서울 재건축 아파트단지들이 잇따라 입찰 공고를 취소하고 있다.
7일 조달청에 따르면 지난 5일 정부가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안을 시행한 이후 강남구 개포5차 우성아파트, 송파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노원구 태릉우성아파트, 강동구 현대아파트가 일제히 정밀안전진단 용역 입찰 공고를 취소했다.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는 이보다 앞선 지난 2일 취소했다. 이에 따라 이들 단지의 재건축 추진 일정은 당분간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안전진단을 위한 업체 선정을 포기하고 나선 것은 정부의 안전진단 기준 강화안이 시행되기 전까지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맺어야 기존 기준이 적용되는데 이를 피하지 못해서다. 지난달 20일 정부의 기준 강화안이 발표된 이후 지난 4일까지 서울에서만 16개 아파트단지가 정밀안전진단 업체 선정을 위한 용역을 냈지만 강동구 명일현대ㆍ상일우성타운, 구로구 구로주공, 영등포구 신길우성2차ㆍ우창ㆍ광장(28번지)ㆍ광장(38-1번지) 등 6곳을 제외하고 모두 업체와 용역 계약을 맺지 못했다. 강화된 기준으로 안전진단을 받다 자칫 통과하지 못하면 용역비만 날릴 수 있다는 우려도 용역업체 선정을 취소한 배경이다. 대단지 재건축 단지의 용역비는 통상 1억~2억원 정도 든다. 강남권 한 구청 관계자는 "아시아선수촌 아파트처럼 튼튼한 아파트는 이번 강화된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용역을 취소한 것으로 본다"면서 "납부된 용역 비용은 조합에 다시 반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기준안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용역비를 모금했으나 끝내 업체와 계약을 맺지 못한 재건축 조합은 이른바 '멘붕'에 빠진 상태다. 재건축 일정을 더 진행시키기 어려워졌을 뿐더러 집값 하락의 우려도 생겨서다. 실제 33억원대에 매물로 나왔던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전용면적 178.32㎡의 경우 최근 32억원대의 급매물도 나오고 있다.
이에 집단행동에 나선 단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마포 성산시영, 양천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4단지, 노원 월계시영 등 주민들은 지난 2일 세종시 국토부 청사를 방문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지난 3일엔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14단지 주민 일부가 오목교역 인근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달에만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안 반대에 관한 청원이 5건 올라오기도 했다.
신종식 서부지역발전연합회장은 "예비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에 한해 유예해 줄 것을 간청했는데 정부는 공청회 한번없이 강경하게 몰아붙였다"며 "지역별 재건축 단지들이 연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행정소송은 물론 지방선거에서 낙선운동까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주민들을 중심으로 뭉친 양천연대와 비강남 국민연대(마포 성산시영ㆍ노원월계ㆍ강동 삼익 등)는 정부가 주민들의 행복추구권과 재산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비강남권 국민연대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와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을 진행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책에 대한 분노를 정권 퇴진 및 낙선 운동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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