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여행] 바람 부는 대로 달렸다, 숨어 있던 너를 만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해안도로 따라 마주한 ‘제주의 色’ / 해안도로 달리다 무작정 멈춘 곳 / 어디든 그림 같아… ‘인생샷’ 찰칵 / 숲 분위기 원할 땐 동백동산으로 /동백과 겨울딸기 붉은 자태 뽐내

제주의 겨울은 변화무쌍하다. 눈발이 날리다가 갑자기 날이 갠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다. 바다도 한 편은 구름이 잔뜩 껴 눈이나 비를 한바탕 쏟아낼 듯한데, 옆으로 눈을 돌리면 화창하게 갠 하늘이 펼쳐져 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 같다.

세계일보

제주의 겨울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해안도로를 타는 것이다. 바람이 세고 흐린 날엔 전망 좋은 아늑한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면 된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제주 겨울이 주는 고즈넉함과 제주 바다의 정취만 품에 안고 ‘지금 이 순간’만 느끼면 된다.


이럴 때 제주 산간지역으로 여행코스를 짜는 것은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눈이 많이 오거나 추워지면 도로가 결빙돼 통제된다. 특히 체인 등 월동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렌터카로 이동한다면 산간지역까지 가기도 전에 위험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

그렇다고 얼마 남지 않은 제주의 겨울을 만끽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해안도로로만 방향을 잡으면 된다. 곳곳이 ‘인생샷’ 포인트다. 날씨를 개의치 않아도 된다. 바람이 세고 흐리면 전망 좋은 따뜻한 카페에 앉아 여유를 즐기자.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제주 겨울이 주는 고즈넉함과 제주 바다의 정취만 품에 안고 현재만 느끼면 끝이다. 제주의 다양한 색을 충분히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일보

제주 동백동산은 습지를 품고 있는 곶자왈이다. 중산간지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백동산에선 겨울 제주의 숲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바로 해안도로를 타도 좋지만, 겨울 제주의 숲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우선 제주 동북쪽 동백동산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다. 제주의 산재한 곶자왈 중 한 곳이지만 제주에서 귀한 습지를 품은 곳이다. 명칭처럼 나무에선 붉은 동백이 모습을 드러내고, 땅에선 붉은 겨울딸기, 자금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만 겨울딸기는 앞서 지나간 이들이 이미 따가 확인하기가 쉽진 않다.

세계일보

동백동산의 습지 먼물깍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세계일보

동백동산은 명칭처럼 나무에선 붉은 동백이 모습을 드러내고, 땅에선 붉은 겨울 딸기와 자금우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백동산 입구에서 출발해 땅 위로 솟은 나무뿌리를 넘고, 뒤엉킨 덩굴 등을 헤쳐나가면 습지, 먼물깍에 이른다. 먼물깍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곳이다. 화산폭발로 생긴 제주는 지형 특성상 물이 고이지 않고 지하로 스며든다. 먼물깍은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빌레라는 암반층이 지하에 넓게 분포해 물이 스며들지 않아 습지가 됐다. 이런 특성으로 람사르 보호 습지로 지정됐다. 겨울 습지의 풍광이야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곶자왈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동백과 겨울딸기, 붉은 자금우 등이 화려한 레드카펫을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제주 평대리는 다른 제주 바다보다 색이 다채롭다. 제주 바다하면 떠오르는 코발트 빛뿐 아니라 모래, 검은 바위 등이 섞여 있어 다양한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바닷가로 방향을 잡아 평대리로 향한다. 제주에서 유명한 카페촌을 꼽으면 서쪽의 애월과 동쪽의 월정이다. 평대리는 월정리보다는 남쪽에 있는 곳이다. 애월, 월정보다 그나마 때가 덜 묻은 곳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일단 바다와 바로 인접해 건물들이 있지 않고, 해안도로 뒤편으로 한발 물러서 있어 시야를 가리는 답답함 없이 시원한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세련된 건물들도 있지만 그래도 창고 건물, 슬레이트 지붕 등 옛 모습을 유지한 식당과 분식집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다색 역시 다른 제주 바다보다 다채롭다. 제주 바다 하면 떠오르는 코발트 빛뿐 아니라 모래, 검은 바위 등이 섞여 있어 다양한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방향은 무조건 남쪽이다. 해안도로가 중간에 끊겼으면 큰길로 나온 뒤 다시 해안도로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면 된다.

세계일보

광치기 해변에선 초록색 바위 이끼와 바다, 일출봉이 어우러진 묘한 풍광에 매료된다.


제주 동쪽 해안을 타고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출봉이다. 일출봉을 직접 들러도 좋지만, 광치기 해변에선 초록색 바위 이끼와 바다, 일출봉이 어우러진 묘한 풍광에 매료된다. 만약 숙박을 이 부근에서 한다면 새벽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광치기 해변에서 일출봉으로 배경으로 뜨는 아침 일출을 놓치면 아쉬울 테니 말이다.

3월 정도까지 독특한 제주의 겨울색을 담을 수 있는 곳이 신천목장이다. 목장이지만 날이 추워 소는 없다. 넓은 목장에 뿌려진 감귤껍질을 해풍에 자연 건조한다. 감귤껍질은 약재나 화장품 원료로 쓰는데 겨울 동안 건조하는 감귤껍질량만 10만t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일보

제주 신천목장은 겨울에 감귤껍질이 소를 대신한다. 넓은 목장에 뿌려진 감귤껍질을 해풍에 자연 건조한다. 너른 목장 부지를 채운 주황빛깔의 감귤껍질과 그 너머 대비되는 푸른 바다의 모습에 절로 카메라를 들게 된다.


너른 목장 부지를 채운 주황빛깔의 감귤껍질과 그 너머 대비되는 푸른 바다의 모습에 절로 카메라를 들게 된다. ‘셀카봉’ 등을 활용해 찍어도 좋지만, 가능하면 감귤껍질과 바다가 같이 배경에 나올 수 있도록 다른 여행객에게 부탁하는 것이 ‘인생샷’을 남기기에 좋을 듯하다.

세계일보

표선해수욕장은 사막처럼 넓은 모래사장을 자랑한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뻗은 모래사장 끝에 간신히 비치는 푸른색을 보고 바다가 있음을 짐작케한다.


제주 남쪽으로 내려오면 표선해수욕장을 만난다. 제주의 다른 해수욕장과 다르게 사막처럼 넓은 모래사장을 자랑한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뻗은 모래사장 끝에 간신히 비치는 푸른색을 보고 바다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세계일보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닮아 이름 붙었는데, 화산활동으로 생긴 다양한 암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문으로 향하면서 들러야 할 곳으로는 소천지를 빼놓을 수 없다. 내비게이션에서 소천지로 검색이 안 되면 제주대연수원을 검색하면 된다. 백두산 천지를 닮아 이름 붙었는데, 화산활동으로 생긴 다양한 암석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울퉁불퉁한 돌 위를 걸어야 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물에 비친 돌들의 반영이 어우러진 모습은 여행객에 발길을 잡는다. 특히 바람이 불지 않을 땐 한라산 반영도 비친다. 백두산 천지 안에 한라산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바다에 있으니 바람이 잔잔한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겨울에는 이 풍경을 담기가 쉽지 않다.

제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