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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오후 한 詩]강화/이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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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뛰어올랐다

망토가 펄럭였다 그런데
로봇은 망토를 입지 않는다지

인류 최후의 날이 오면
곳곳에 패인 상처가 전리품처럼 남아
학교는 안 가도 된다지

옆집 명수와 싸움이 붙어도
마당이 넓어
나무칼도
발사된 주먹도 가닿지 않고

삼단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합체를 해야 한다지 마당엔 빗금으로
어지러운 발자국

아빠는 엄마를 찾으러 갔고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갔고

훈이는 김 박사를 찾으러 갔다지
전차도 전투기도 없는 기지가 집요하게 문을 걸어 잠가

부러진 나무칼 위로 투구꽃이
활짝 폈다

단단해져야지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나는

■내가 아직 한참 어렸을 때, 그때, 아직 초등학교엔 들어가지 못했을 때,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동무들과 놀고도 남은 해를 멀거니 바라보곤 했을 때, 그러나 소꿉놀이를 하기에는 왠지 멋쩍어졌을 때, 그 시절, 내가 제일 가지고 싶었던 건 안방 다락 한편에 개켜진 보자기들, 그 보자기들 중에서도 빨간색 보자기, 아니 아니 빨간색 슈퍼맨 망토. 슈퍼맨 망토에다 나무 작대기 하나만 있으면 나는야 천하무적, 하늘 끝까지 마음대로 슝슝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장독대 옆 담벼락에서 풀쩍 날아올랐는데… 왼팔에다 깁스를 하고선 차돌로도 깰 수 없는 로켓 팔이라고 히물거리던 그 저녁. 돌아보면 그게 다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그런 저녁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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