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조성경기자] “메이저냐, 마이너냐.”
얼마전 영화 ‘염력’의 연상호 감독이 한참을 이야기한 주제다. 연 감독은 ‘염력’을 마이너 영화라고 했다. 천만관객을 모으며 대박을 낸 전작 ‘부산행’과 비교해 ‘염력’이 100만도 모으지 못하는 등 관객몰이에 실패해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부산행’도 메이저영화는 아니기 때문. 그런 그는 국내 관객들에게 메이저 영화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염력’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면서 ‘부산행’과 ‘염력’이 흥행이 엇갈린 이유를 스스로 분석했다. 잘 들어보니 국내극장가에서 통하는 성공 방정식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메이저 vs 마이너
연상호 감독은 ‘염력’을 “내마음의 1위 작품”이라고 꼽았다. “그전에는 ‘사이비’가 1위였는데, ‘염력’으로 바뀌었다”면서 “그 이유는 예전부터 하고 싶은 영화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20대 때 대중적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이너 영화들, 단순한 B급 코미디를 좋아했다. ‘염력’은 단순한 B급 코미디다. 대중적이진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라는 점이나 CG등으로 100억이 넘는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마이너라는 호칭이 딱히 어울리지 않는다. 연 감독도 그런 부분은 인정은 하면서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 상업적인 요소를 아예 신경 안 쓴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B급 코미디를 더 좋아해서 그걸 유지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초능력이라는 소재가 ‘부산행’ 때의 좀비보다는 훨씬 친숙한 소재로 메이저 영화의 가능성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연 감독은 “초능력 소재가 블록버스터에서 자주 쓰는 소재이지만,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메이저냐 마이너냐로 구분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재면에서는 좀비가 초능력보다 더 마이너인지 모르겠지만,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블록버스터의 문법으로 만들었다. 그게 국내 관객들에게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행’은 포지셔닝이 잘 된 영화였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블록버스터처럼 보였고, 해외관객들에게는 잘 만든 B급 코미디로 보였다.”
만일 ‘염력’을 그가 말하는 메이저 영화의 문법으로 풀었다면 어떤 스토리가 됐을까. 연 감독은 “실제로도 관객들이 좀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방식의 영화로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은 있었던 것 같다”면서 “내용이 한 번 바뀌기도 했다. 염력자 두명이 나와서 싸우는 방식일 수 있었다. 그런 것도 있었는데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가 쓴 시나리오이기도 하고,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이 있어서 이번 영화가 나왔다. 그런데 투자사나 제작사에서 이게 (흥행)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나름대로 다시 이야기를 다시 짜기도 했다. 큰 틀에서 주인공이 있고, 비슷한 힘을 가진 어떤 아이가 있는, 그래서 결국 둘이 싸운느 느낌의 스릴러 느낌의 영화로 한번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천만영화의 힘
연 감독은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본업이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다. 현재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는 ‘부산행’과 ‘염력’을 경험하면서 상업영화를 극장에 개봉시키기까지의 과정이 국내 극장 시스템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의 극장 시스템에 부합하는 영화를 만드려니까 굉장히 어렵더라. 보편적인 연령대와 입맛을 맞춘다는게 굉장히 힘든 것 같다”고 토로한 연 감독은 “우리나라 극장 시스템은 슬라이딩 방식이 아니다. 극장들이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천천히 영화를 새로 거는게 아니라 한번에 뻥 터뜨리는 방식이다. 그런 영화를 선호하고, 그것도 대부분의 극장들이 똑같이 걸고 내린다. 그런데 ‘염력’은 그런 시스템에 부합되는 영화가 아닌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도 ‘염력’은 마이너 영화였다.
그럼에도 연상호 감독에게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건 ‘부산행’이 만들어준 기회 덕분이다. 그는 “그래도 이제는 한국의 극장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지 않고, 넷플렉스도 있고 플랫폼이 다양해지면 영화도 다양하게 만들수 있는게 아닌가 생각했다”면서 “‘부산행’이라는 여화로 해외에서 조명을 받고, 넷플릭스에서 ‘염력’을 사갔다”고 했다. “‘부산행’ 때 좀비라는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어떻게 풀면 좋을까 고민했을 때 성공해서 ‘염력’도 제작할 수 있었다. ‘부산행’으로 흥행하고, 칸에도 가봤다. 그런게 ‘염력’까지 갈 수 있었던 힘이었다.”
성공의 경험이 새로운 성공의 기회를 열어주는 건 모두가 아는 공식이지만, 연상호 감독이 몸소 체험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속해서 성공가도를 걷느냐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는 “‘부산행’ 이후 매끈한 상업영화 감독이 나타났다고 할수도 있었는데, 그게 내 정체성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안정적이지는 않은 사람인 것 같다”면서 다시 한 번 마이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부산행’, ‘염력’엔 없는 서사의 힘
스스로 대중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연상호 감독에게 ‘대중이 좋아하는 건 뭘까’ 물었다. 그는 “다들 알고 싶어하지만, 알수 없는거다. 단순하게 볼수도 없고, 복잡하게 볼수도 없다. 엄청나게 많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게 대중이다. 보편적 대중이 원하는걸 찾기 위해서 데이터 공부 많이 하지만 그렇게 취합해도 알수 없는게 대중이다. 그래서 대중영화를 만드는게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그면서도 “국내 관객들은 서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 감독은 “‘단순하고 뭉툭한 느낌의 영화들이 있다. ‘염력’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옛날에 좀 고급스럽지 않은 느낌의 영화들처럼. 그런데 서사를 복잡하게 만들기 시작하면 슬랩스틱 등 들어갈 자리가 많지 않아진다. 그래서 단순한 서사 속에서 상황상황이 골때리고 웃긴 걸 만들고 싶었다. 그 수위를 어디까지 갈건지가 문제였다”면서 “그런 단순한 이야기에 관객들이 일종의 배신감이 있는 것 같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기대감에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배신감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건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예상은 했었다”면서 “한국 사람들은 서사가 강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제대로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연 감독은 “‘부산행’도 서사는 약했다. 다만 액션으로 풀어가니까 ‘염력’의 슬랩스틱과 B급 유머가 주는 톤앤매너와 달라서 관객들이 많이 다르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cho@sportsseoul.com
사진|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