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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플레이그라운드 인사이드 ‘카페나 할까’ 생각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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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상 일생에서 제일 많이 만난 사람이 아마도 식당 주인과 카페 사장님일 것이다. ‘언젠가 나도 카페나 해 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카페 사장의 일상을 인터뷰 한 뒤 바로 그 생각을 접음과 동시에 그들을 존경하기로 작정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카페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매일 한 번은 들르게 되는 카페 또는 커피집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분주해진 카페 운영 일정을 들어보면 ‘카페나 해 볼까’라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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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카페 바에 앉아있다. 주인장은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 혼자 커피를 만들고, 혼자 주문 받고, 혼자 당근 껍질을 벗기고, 혼자 라떼를 만들고, 혼자 라떼아트 작업을 한다. 혼자 미니 냉장고에서 한라봉 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담고, 그것들을 쟁반에 올려 손님 테이블에 갖다 준다. 심지어 손님이 소품을 구입하려고 하면 일일이 대답해 주고 혼자 계산하고 혼자 돈을 받거나 카드를 긁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 자리에 앉아 카페 주인의 하루를 관찰한 적은 없지만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눠 본 결과 주인의 하루, 아니 일주일이 어느 사이클로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대부분 카페가 그렇듯 이 카페 역시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10시에 문을 열기 위해 출근하는 시간은 8시.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언제쯤 일어나야 하는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일은 청소와 정돈과 장사 준비이다. 모든 일은 혼자 한다. 직원이 출근하는 날 또한 청소와 준비는 주인 몫이다. 주인 휴무일에도 직원이 장사할 준비는 주인이 미리 해 놓아야 한다. 물론 직원도 그때그때 준비하고 대처하는 업무는 하게 되지만.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 필자가 있는 이 카페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차와 케이크, 그리고 기념품이다. 제주도에 있는 카페라 기념품을 파는 게 아니라 요즘 카페의 흐름이 그렇다. 메뉴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비엔나커피, 오키나와 흑당라떼, 에스프레소 진저라떼, 진저라떼, (교토산)말차라떼 등이 있다. 이외에도 핫초코, 구좌당근케이크, 한라봉케이크, 토스트+버터, 구좌햇당근주스, 제주한라봉주스, 풋귤에이드, 한라봉에이드도 인기인데 베리베리에이드, 망고요거트스무디, 요거트스무디, 발효차(영귤향잎차), 녹차(잎차), 한라봉차, 풋귤차 등 종류가 무려 25종에 달한다. 모든 재료는 맛과 신선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주인은 그 흐름을 언제나 꿰고 있어야 한다. 모든 메뉴의 재료 수급을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는 것만 대충 늘어놓아 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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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흑당라떼는 오키나와산 유기농 흑설탕을 이용한 라떼다. 오키나와 유기농 설탕은 주인이 직접 구매해서 테스트를 한 끝에 메뉴로 올렸고,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흑당라떼를 수입하는 업체를 통해 식재를 확보하고 있다. 말차라떼는 교토산 말차를 사용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교토 말차를 대신할 만한 말차를 국내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급적 교토에 직접 가서 사오게 된다. 저가항공을 이용할 경우 인천에서 교토까지 20만 원 미만이면 다녀올 수 있지만 숙박비 등을 생각하면 ‘휴가 가는 김에’가 아니고서야 오직 말차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올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뭐가 남겠는가. 그래서 이 집 주인은 친구의 해외 여행에 큰 관심을 보인다. 얼마 전 친구가 교토 여행을 다녀왔는데, 친구의 손에 카페 주인이 지정한 말차 꾸러미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근의 고장 제주 구좌에서 카페를 하다 보니 제철 식재를 이용한 메뉴도 꽤 있다. 구좌당근케이크, 한라봉케이크가 그것들인데, 주인이 제빵사가 아니라 제빵사 이주민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있다. 말이 부탁이지 맛 관리와 신상 개발을 위한 모든 콘트롤은 카페 사장이 해야 한다. 요즘 인기 있는 ‘당근주스’의 맛을 위해 주인은 당근 농사를 짓는 마을 어른을 찾아가 안정적 공급을 부탁했고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경차를 끌고 접선 창고에 가 그 무거운 박스를 다섯 개나 혼자 싣고 자신의 창고에 내려야 한다. 이 집은 맛있는 풋귤차로도 소문난 카페인데, 천수답으로 지은 풋귤(햇귤) 확보를 위해 천수답 농사꾼을 섭외했다. 그럼으로써 일찌감치 물량을 확보, 청을 담가 일 년 내내 제주의 향기와 달콤함을 손님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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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소중한 밥 한 끼

아침 식사를 안 하는 이 카페 주인은 아침 겸 점심을 꼭 11시쯤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오전에는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한산한 그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메뉴에는 제한이 있다. 냄새가 나서는 안 되고 간단히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카페에 들어섰을 때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냄새가 나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한때는 식당을 준비하는 이주민에게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기도 했지만 그 이주민이 바빠지는 바람이 지금은 수제햄버거나 맥도날드, 또는 읍내 돈가스집에서 파는 흑돼지돈가스 한 쪽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그나마 손님이 없어서 느긋하게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날씨가 안 좋을 경우 일찌감치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많고,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정량 섭취에 실패할 경우도 태반이다. 그런 날은 천상 퇴근 후 저녁이 제대로 된 유일한 식사 시간이다. 그래서 이 집 주인은 그 저녁을 ‘내겐 너무도 소중한 한끼’라고 부르며 웃곤 한다.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배 곯아가며 장사를 하는 건지. 더욱 짠한 일은, 그 소중한 한 끼조차 1만 원이 넘는 메뉴는 피하는 습성이다. 카페를 하다 보면 ‘저걸 먹으려면 당근주스를 몇 잔 팔아야 하지?’ 하며 소심해지고, ‘임대료가 오를 게 뻔한데 내가 1만 원이 넘는 저녁밥을 먹는다는 게 말이 돼?’ 등 카페 수입을 곧바로 의식주 소비로 연결 짓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번은 주인, 그리고 주인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해 내 차에 그분들을 태운 적이 있다. ‘어디로 갈까요?’ 행선지는 카페 주인이 결정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일단 소중한 한 끼를 먹은 뒤 간 곳은 식자재마트. 매일은 아니지만 수시로 재고 관리를 해야 하고, 없는 식재는 당연히 오늘 밤에 확보해야 하므로 저녁밥도 식자재마트가 있는 곳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간다고 일과가 끝나는 건 아니다. 카페에 비치한 책의 순환을 위해 신간 정보도 들여다 봐야 하고 기념품 판매와 재고에 대한 파악도 해야 하고, 작가에게 보내줄 금액 정산도 해야 한다. 밥 먹은 뒤라 잠이 쏟아지지만 오늘 마무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게 뒤죽박죽될 수 있으므로 미룰 여가가 없다.

그렇다고 개인 취향을 포기할 순 없는 일.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뉴스를 틀어놓고, 책을 읽으며 동시 다발 하루를 마무리 하곤 한다. 이렇게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버는 돈은 얼마나 될까? 묻는 것 자체가 결례이고 대답해 줄 턱도 없지만, 조심스레 듣자 하니 얼추 자신의 휴일과 주말에 함께 일하는 직원(것도 정규직!) 급여와 운영비, 기타 등등을 제하고 나면 중소기업 월급도 안 되는 정도의 돈이 남는 것 같다. 빠듯해 보이는데 직원은 왜? 이렇게 물어본 적이 한 번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여행자 발길이 워낙 많아 혼자 감당되지 않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손님에게 가기 때문에 직원을 쓰는 건 당연한 일이였다. 또 개인의 삶, 세금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을 때 역시 알바보다는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이유 또한 자신의 삶을 지탱함과 동시에 고용에 필요한 최소의 시간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게 이런 것이군’하며 주인장을 우러러 보았다. 미래비용을 생각할 처지는 아니지만, 간신히 조금씩 모으고는 있다는 말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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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이 카페 주인장은 엄청난 독서량에 대한 목표, 문화 예술에 대한 존경심, 그들과 함께 소통하며 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갖고 사는 것 같다. 그동안 만났던 카페 주인들도 비슷한 성향과 부지런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의 카페를 하는 이유도 한결 같다.

‘부지런히 잘 운영하면 내 인생 정도는 꾸려갈 수 있고, 작지만 저축도 좀 하며 미래를 꿈 꿀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이 분주함이 체질에 맞기 때문이지요.’

난 카페 사장들은 지금도 존경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유지할 수 있는 아니다. 카페를 하고 싶다면, ‘카페나 할까?’가 아니라 ‘난 카페와 맞는 체질일까?’ 자가 진단이 먼저다.

[글과 사진 아트만(아트만텍스트씽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17호 (18.02.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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