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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적나라하고 혼란스럽지만 진실한 '용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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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308쪽│부키

이데일리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제인 스튜어트는 세 살부터 열두 살 때까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어린 나이에 당한 끔찍한 폭력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몸과 마음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제인의 남동생도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남동생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는 남동생의 장례식장에 초대받지 못했다. 성인이 된 뒤 제인은 과거의 상처에서 해방된 듯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세 살이 되면서부터 다시금 어릴 적 끔찍한 악몽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쳐봤지만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는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에 관계를 끊는 것으로 정리를 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제인은 어떤 상태일까. 8년이 넘게 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가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 아버지가 자신과 동생에게 한 악행을 용서한 건 아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양극단의 시각에서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덜어내려 한 것이다.

T J 리든은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 해머스킨 네이션에서 활동하며 15년 동안 증오·편견·인종차별주의를 퍼뜨렸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백인 우월주의 운동에서 등을 돌리고 ‘증오 퇴치를 위한 태스크포스’와 함께 일하고 있다. 어린 두 아들이 자신처럼 증오심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주의에 빠지는 모습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증오감 퇴치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함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 ‘용서’는 말처럼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래서 용서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은 46명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들의 깊은 고민과 결단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비영리자선단체 ‘용서 프로젝트’의 설립자인 저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의 개인적인 치유 여정을 담은 모음집을 통해 용서에 대한 적나라하고 혼란스럽고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세상에 본질적으로 사악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다. 사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지금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울림을 줄지는 의문이 간다. 정치인, 자본가, 나아가 문화예술인까지, 자신의 잘못 숨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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