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라이프 스타일] 바퀴에 미쳤다, 엄마들에게 자유를 줬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유모차 ‘부가부’ 창업자 바렌브뤼흐

한 손으로 미는 유모차 세계적 히트

손잡이 각도, 바퀴 연결도 다르게

휠체어 전문가와 여행가방 제작도

중앙일보

네덜란드 프리미엄 유모차 ‘부가부’를 만든 맥스 바렌브뤼흐 최고 디자인 책임자. [사진 부가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엄마의 인권을 지켜주겠다’고 결심한 네덜란드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오래된 울퉁불퉁한 돌길로 이루어진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엄마들이 낑낑대며 유모차를 끄는 것을 보고 ‘엄마가 편하게 외출할 수 있는 유모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대학 졸업작품으로 이동과 접고·펴기 쉬운 유모차를 디자인했다. 졸업 후엔 가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프리미엄 유모차 브랜드 ‘부가부’를 만든 맥스 바렌브뤼흐의 이야기다.

그가 처음 유모차를 만든 건 1999년이다. 당시 출고 가격은 100만~150만원. 부가부는 ‘강남엄마 유모차’로 알려진 ‘스토케’(2003년)보다 앞서 프리미엄 유모차 시장을 열었다. 7명의 친구로 구성된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지금은 직원 수만 1400여명, 세계 50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었다. 첫 물량으로 판매한 유모차 500개에서 부품 불량이 발생했다. 바렌브뤼흐는 500명 고객의 집을 일일이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줬다. 그 성의와 진심에 감동한 고객들은 자진해서 입소문을 냈고, 2006년 세련된 유모차를 찾던 미국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관계자가 부가부에 유모차 협찬 요청을 하면서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 1월 31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새로운 유모차 모델 ‘부가부 폭스’ 소개행사 현장에서 바렌브뤼흐를 직접 만났다.



Q : 왜 하필 유모차였나



A : “어릴 때부터 ‘바퀴에 미쳤다’고 할 만큼 바퀴 달린 물건은 다 좋았다. 자전거도 6개나 있었다. 놀 때도 늘 아버지 차 주변에 있었다. 거리를 쏜살같이 달리고 무거운 것도 쉽게 이동시키는 기능이 신기했다. 성인이 돼서도 바퀴에 대한 애정은 계속됐고, 산업 디자인과 졸업 당시 유모차에 꽂혔다.”




Q : 남학생이 어떻게 ‘유모차=엄마의 인권’이라는 생각을 했나.



A : “지금은 프리미엄 유모차가 많이 나왔지만 90년대 거리에선 엄마들이 참 불행해 보였다. 어깨엔에가방을 잔뜩 지고 잘 움직이지 않는 유모차를 힘겹게 끌고 다녔으니까. 움직이기 편한 유모차가 있다면 엄마의 외출이 즐거울 텐데, 안타까웠다.”




Q : 엄마가 움직이기 편한 유모차란.



A : “유모차를 세상에서 처음 만든다는 생각으로 아예 새로 개발한 것들이 많았다. 우선 손잡이 위치에 신경 썼다. 유모차를 밀고 가기에 가장 편한 각도를 찾아내는 한편 키에 따라 높이 조절도 할 수 있는 조절 장치를 달았다. 또 요철을 쉽게 넘어가면서도 아기에게 충격이 없도록 유모차 중앙에 새로운 서스펜션(충격 완화 장치)을 개발하고 바퀴를 연결하는 부속의 각도도 사선으로 디자인했다.”


중앙일보

부가부의 여행용 캐리어는 원하는 크기에 맞춰 케이스를 바꿔 달 수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창립자인 바렌브뤼흐는 현재 경영 대신 ‘최고 디자인 책임자’를 맡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신제품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유모차 시트를 분리해 핸드캐리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처음 고안했고, 탈부착이 쉬운 햇빛 가리개와 시트·손잡이를 만들어 엄마가 원하는 색과 소재를 고를 수 있게 했다.

지난 1월 신제품 소개 행사에선 무용수와 재활용 의상을 등장시킨 퍼포먼스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무용수들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360도 뱅글뱅글 돌리며 춤을 췄다. 패션 모델은 92개의 초록색 페트병을 단 드레스를 입고 유모차를 끌었다. 유모차의 활동성과 재활용 원단 사용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Q : 유모차 이름이 왜 ‘폭스(여우)’인가.



A : “유려한 움직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모듈을 맞춤식으로 장착할 수 있는 등 영리한 여우를 닮았다는 의미다. 동물 이름을 붙인 건 첫 모델인 ‘프로그’(개구리)부터다. 눌러도 다시 잘 튀어 오르는 서스펜션을 달았는데 그 모양이 개구리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것 같았다. 이후 유모차의 성격과 어울리는 동물·곤충을 모델명으로 정하고 있다. 부속을 여러 가지로 바꿔 낄 수 있는 모델은 ‘카멜레온’, 도심 속을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는 날렵한 움직임의 모델은 ‘비(bee·벌)’라고 지었다. 두 아이를 함께 데리고 다녀야 하는 엄마를 위한 쌍둥이 유모차는 짐을 많이 싣고 다녔던 ‘동키(당나귀)’가 떠오르더라.”


50대의 나이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평범함의 허를 찌른다. 직원들로선 그의 존재 자체가 ‘어느 방향으로 구를지 모르는 바퀴’인 셈이다. 지난해에는 유모차와는 상관없는 여행용 캐리어를 개발해 다시 한 번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다.



Q : 갑자기 여행용 가방을 만든 이유는.



A : “부가부는 바퀴가 달린 모든 것을 만드는 ‘모빌리티 브랜드’다. 회사의 두 번째 아이템으로 캐리어를 선택한 이유는 유모차와 같다. 공항에 가 보라. 다들 힘들게 짐을 끌고 다니지 않나. 한 손으로도 큰 짐을 쉽게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족에게 전화할 수 있는 가방을 만들고 싶었다.”




Q : 여느 여행 가방과의 차별점은.



A : “캐리어의 운영방식을 휠체어에서 많이 따 왔다. 아예 휠체어 제작 전문가를 영입해 기존의 여행가방처럼 뒤에서 끌지 않고, 앞으로 밀고 가는 형식을 개발했다. 또 발로 페달을 밟으면 쉽게 가방을 분리·조립할 수 있다. 크기도 다양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크기의 케이스를 사서 바퀴가 달린 장치에 부착만 하면 된다. 캥거루처럼 큰 케이스 위에 작은 케이스를 덧붙일 수도 있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세상에 아직 없는, 바퀴 달린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거다. 그게 뭐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윤경희 기자annie@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