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3 (일)

텔레비전을 하루에 몇 시간 보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사진출처: 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분유 광고가 없어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에는 분유 광고가 넘쳐났다. 하루는 앵커가 다급한 어투로 뉴스를 전했다. 모유의 초유 성분에서 중금속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말이다. 그래서 내용을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여 보았는데 별다른 내용 없이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듣고자 한 것은 초유 성분이 나오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안 나온다는 건지, 그리고 그 초유에 들어 있는 중금속의 양이 아기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지 아닌지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초유에 중금속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로 끝이었다.

그래서 그 뉴스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광고 협찬 업체를 보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분유업체가 협찬을 했다. 결국 뉴스를 빌려서 모유를 먹이지 말고 분유를 먹이라는 광고를 한 것이다. 방송 매체는 광고 수익으로 먹고 사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뉴스를 듣고 판단해야 하는 수많은 아기 엄마는 어떻게 될까?

역시 다음 날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모두 그 뉴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당시는 나도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이기에 육아 정보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온갖 정보를 섭렵하던 이웃집 엄마는 그 뉴스를 듣자마자 모유 수유를 갑자기 중단해 버렸다. 그 뒤로 값비싼 수입 분유를 먹인다고 했다. 모유가 아기와 엄마에게 좋다는 맘 카페 정보를 철썩 같이 믿었던 엄마였다. 그런데 뉴스 하나 때문에 마음을 바꾼 것이다. 영문도 모르는 아기는 엄마 품에서 떨어져 나가 고무 젖꼭지로 갈아타게 되었다. 그 엄마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거나 믿고 있었다. 그 결과 온갖 걱정으로 늘 인상을 썼다.

대부분의 성인은 저녁 식사 후에 텔레비전을 본다. 이제는 케이블 채널까지 생겨서 좋은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그런데 시청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게 문제다. 특별히 집중하지 않아도 화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건 방송 연출 기법 덕분이다.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들은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텔레비전 화면은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웬만하면 자막까지 나오므로 쉽게 볼 수 있다.

텔레비전 안에는 온갖 정보가 넘쳐난다. 마치 수많은 퍼즐 조각을 이런 게 있다 저런 게 있다 하면서 무한정 보여주는 식이다. 그 퍼즐을 맞추는 건 온전히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은 6개월만 지나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상파 방송의 뉴스만 보고 그날 하루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알았다고 하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해서 방송된 것은 무조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관련 서적을 뒤져보기도 하고, 다른 매체의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판단 기준이 생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매우 낮다. 대신 영상 매체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깊은 사색과 통찰은 건너뛰고 남이 편집해 놓은 정보만을 손쉽게 얻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점차 자신의 생각은 없어지고 남들과 같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명품 식사(모유)에서 인스턴트 식(분유)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웃집 아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매스미디어로부터 독립하자. 그것은 시간을 버는 일이고 내 인생을 지키는 일이다.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조금만 줄이자. 그 시간에 독서나 명상을 하면 어떨까?

[허윤숙 작가/교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