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3개국 작년 8월부터 재협상
車 원산지규정 개정 등 놓고 대립
신한, 지난달부터 현지 은행 영업
우리·하나, 법인설립 추진하지만
美 탈퇴 등 우려…사업 속도 조절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글로벌 사업의 영역 확대로 멕시코 진출에 나선 국내 은행들이 지지부진한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논의에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멕시코에 생산네트워크를 구축한 국내 기업들이 나프타 폐기나 미국의 탈퇴 시나리오에 따라 멕시코 이탈 또는 잔류 여부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만 좀처럼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협상 결과만 쳐다보고 있다. 현지 진출 기업을 공략하려던 국내 은행들의 셈법도 덩달아 복잡해지고 있다.
◇속도 조절 나선 은행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내 은행 중 최초로 멕시코에서 영업 인가를 받은 신한은행 멕시코 현지법인은 지난달 영업을 개시했다. 신한은행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강한 멕시코에서 외국계 은행으로서 영업인가를 취득하기 위해 2년 이상 공을 들였다.
미래 먹거리를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은행의 입장에서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는 아시아 시장 외에 새로운 시장을 발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따라서 은행들이 주목한 곳은 바로 멕시코다. 미국에 인접한 지정학적 강점과 높은 성장 잠재력, 저렴한 인건비와 무관세 혜택을 바탕으로 한국계 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멕시코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기아자동차, 현대제철, 포스코, 한화첨단소재, MCNS(SKC와 미쓰이화학 합작사), GS칼텍스 등이 진출해 있다. 신한은행 외에도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이 이에 주목하고 멕시코 현지 법인 설립 준비가 한창이다.
문제는 지지부진한 나프타 재협상이다. 나프타는 1994년 1월 발효돼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참여한 자유무역협정이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프타를 미국의 무역적자 폭을 확대한 ‘최악의 무역협정’이라고 평가하며 재협상을 요구함에 따라 지난해 8월 3개국은 재논의에 들어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시중은행들도 속도 조절에 나섰다.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며 멕시코 시장의 진출의 확대나 축소 등의 전략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멕시코 내 약 800개에 이르는 한국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을 시작해 이후 현지에 특화된 소매 영업으로 확대하겠다던 신한은행은 “멕시코 현지법인의 운영 확대 계획도 현지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올 연말까지 협상 이어질 가능성도
나프타는 지난달 말 6차 협상까지 진행됐으나 회원국 간 이견으로 합의가 지지부진하다. 미국은 자동차의 원산지 규정을 개정하고 미국산 부품 비중을 50%로 늘리는 등 조건을 제기했으나 캐나다와 멕시코가 반대에 나섰다. 투자자·국가 간 분쟁 해결, 일몰 규정 등에도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6월과 10월 캐나다 지방선거, 7월 멕시코 대선에 이어 11월 미국 중간 선거까지 회원국들이 주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있어 올해 말까지 타결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은행들로서는 결국 나프타 협상결과에 따라 멕시코 진출 등의 시장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 시중은행 글로벌사업 관계자는 “현지 멕시코 진출 국내 기업들은 나프타 재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멕시코 생산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미국 시장 판매량을 줄이고 중남미와 유럽 시장 판매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라며 “하지만 실제 재협상 결과에 따라 추이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어서 이에 따라 은행들도 멕시코 영업의 확대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대로 미국의 탈퇴나 나프타 폐기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같은 나프타 존폐 시나리오에 따라 은행들도 덩달아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프타의 폐기나 미국의 탈퇴 시 멕시코를 북미지역 공략의 생산기지로 활용했던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멕시코 시장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나프타 재협상 실패는 멕시코에 구축한 우리 생산 네트워크에 특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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