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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시간 없는 시간 끌어모아 낸 휴가. 평균 이상의 추억을 '더' 남기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용품은 당연하고, 현지에서 보고 즐길 거리까지 미리 챙긴다. 가이드북도 꼼꼼히 읽어둔다. 어디 가서 뭘 먹고, 뭘 하고, 뭘 피하고 등을 정리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한 것이 안 한 것보다 못하지는 않은 법 아닌가.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얼마 전 가족과 홍콩을 찾았을 때 일이다. 홍콩에서 꼭 봐야 할 몇 가지 중 빠지지 않는 피크트램을 타러 갔다. 구름 인파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기다림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실로 어마어마했다. 피크트램을 타기 위한 줄이 건물을 한 바퀴 돈 것은 기본이고, 건너편 주차장까지 가득 메웠다. 과연 이 줄이 줄기는 하는 걸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히 패스트 트랙(fast track)을 활용하면 일반 입장보다 빠르게 탑승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대기가 상당했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우리 순서가 됐다. 그냥 기다렸다면 1시간 반 이상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훅 하고 한 무리가 우리를 앞질러 갔다. 새치기였다. 붙잡을 새도 없었다. 우사인 볼트를 방불케 한 그들은 아들과 딸을 둔 한국인 가족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굳이 해외까지 나와 그것도 여행 중에 얼굴 붉히기는 싫었다.
덜컹. 그렇게 피크트램은 빅토리아 피크를 향해 출발했다. 경사가 45도를 넘을 정도라 의자에 앉자마자 몸이 뒤로 젖혀졌다. 깎아지른 산에 어떻게 이런 철로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란 경외감이 들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째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우리를 새치기 했던 가족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었다. 엄마가 아이를 혼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귀를 세워 엿들어보니 자리를 못 맡았다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이른바 피크트램 명당이라 불리는 오른쪽 자리에 왜 못 앉았냐는 꾸짖음이었다. 피크트램은 진행 방향의 오른쪽에 앉아야 바깥 경치를 보다 좋게 감상할 수 있어 여행꿀팁으로 꼽힌다. 엄마는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홍콩 시내를 보라고 두 아이를 다그쳤다. 일어나 고개를 빼서 보라며 아이를 몰아붙였다. 두 아이의 얼굴과 두 눈에서는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느껴졌다.
남들보다 빨리, 좋은 정보로, 더 나은 자리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방법의 문제다. 원하는 자리에 못 앉아 불쾌한 분위기 속에서 밀어 넣는다 싶을 정도로 풍광을 아이들 기억 속에 주입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사실 정상에 올라가면 더 편한 곳에서 더 확 트인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노래한 시가 있다. 어떤 일이든 매섭게 다그친다고 좋은 길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미처 깨닫지 못할 때 느끼는 행복이 더 달콤한 법이다. 여행은 더 그렇다. 이번에 못 봤다면 다음 기회를 만들자고 기약하는 게 여행이다. 오른쪽이면 어떻고 왼쪽이면 어떠랴. 그 자리에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이 곧 추억 아닌가.
※ 여행 관련 이슈를 전방위로 다루는 '여행 판도라'는 여행+ 소속 기자와 작가들이 직접 목격한 사건·사고 혹은 지인에게 받은 제보를 바탕으로 꾸려집니다. 독자 참여도 가능합니다. 공론화하고 싶은 이슈를 비롯해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나 꼭 고쳐야 하는 관행, 여행 문화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해주세요.
[장주영 여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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