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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사설]법관 사찰 문제, 강제수사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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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는 미완에 그쳤다. ‘양승태 대법원’이 법관을 사찰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담당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 한 것까지 확인했으나, 온전한 진실을 캐내는 데는 실패했다. 의혹의 핵심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조사를 실시한 행정처 판사 컴퓨터 3대의 파일 중에서도 760여개는 비밀번호가 설정돼 열어보지 못했다. 특히 이들 760여개 파일 가운데 300여개는 이미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찰의 ‘윗선’이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사찰 대상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졌는지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법원 자체적으로는 더 이상의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해졌다.

추가조사위원회가 밝혀낸 내용만으로도 범죄 혐의는 차고 넘친다. 법원행정처 차장이 행정처 판사들에게 직무범위 밖의 일을 시킨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조사 대상 컴퓨터에서 파일 300여개를 삭제한 행위는 증거인멸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일선 판사들은 지금까지 강제수사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왔다. 헌법에 규정된 삼권분립 원칙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추가조사위 결과가 발표된 이후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특단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법관을 사찰하고 특정 사건 재판에 개입하려 한 것은 가벌성을 따지기 이전에 민주주의 뿌리를 훼손한 중대 사태이기 때문이다. 향후 전국 법관대표회의 등을 통해 구체적인 의견수렴이 이뤄지리라 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3일 추가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와 관련해 “일이 엄중하다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다. 자료들도 잘 살펴보고 여러 사람들 의견을 들은 다음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의 고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무슨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잘못된 과거가 있었다면 온전히 털어내야 한다. 그럴 때만 법원이 새롭게 다시 출발할 수 있다.

사법부에 대한 강제수사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음은 모두가 안다. 그러나 법원이라고 성역이 될 수는 없다. 김 대법원장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임 전 차장 등 법관 사찰 관련자들을 수사의뢰해야 한다. 단순히 실추된 판사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함이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민주국가의 중요한 기둥임을 확인하는 조치다. 김 대법원장은 시민의 분노가 임계치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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