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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출입구 ‘활활’ 옥상·뒷문은 막혀…여행 왔던 세 모녀 등 6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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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50대, 성매수 요구 거부에 방화…종로 여관 10명 사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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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심야에 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6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투숙객이 잠든 새벽 시간대에 발생한 화재인 데다, 비상구가 없어서 사실상 유일한 탈출로인 여관 입구가 화염에 휩싸이자 인명피해가 커졌다.

■ 성매수 거부당하자 방화

화재는 20일 오전 3시쯤 서울 종로구 종로5가의 한 여관에서 발생했다. 21일 사건을 수사 중인 혜화경찰서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방화 피의자 유모씨(53)는 화재 발생 약 1시간 전인 20일 오전 2시쯤 술에 취한 상태로 여관을 찾아 업주에게 성매수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범행을 저질렀다. 유씨는 “술에 취해 성매매 생각이 났고, 그쪽 골목에 여관이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처음 보이는 여관에 들어갔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여관 주인 김모씨(71)가 요구를 거절하자 말다툼을 벌였고, 이후 경찰에 전화를 걸어 “투숙을 거부당했다”고 신고했다. 여관 업주 역시 2차례 경찰에 신고해 오전 2시9분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훈방 조치만 하고 현장을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 출동했을 때 피의자가 술에 취해 있었지만 말은 통하는 상태였고, (상황이) 극단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여 자진귀가 조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은 한밤중 방화라는 참사로 이어졌다. 이후 유씨는 택시를 타고 인근 주유소로 이동해 휘발유 10ℓ를 구입한 뒤 여관을 다시 찾아 1층 바닥에 뿌리고 불을 붙였다. 불을 지른 뒤 112 신고센터로 직접 전화를 걸어 “여관에 투숙하려고 했는데 거부당해 불을 냈다”고 신고했다. 인근 대로변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유씨는 21일 현존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 유일한 탈출구 화염 휩싸여

화재 당시 여관에는 총 10명이 투숙하고 있었다. 해당 여관에는 8개 객실에 창고와 객실 겸용으로 쓰는 ‘뒷방’과 주인이 머무르는 내실 등 10개 방이 있는데, 이날은 2층 객실 한 곳을 제외하고 투숙객으로 꽉 찬 상태였다. 오전 3시7분쯤 화재 신고를 접수한 소방당국은 차량 50대와 소방관 183명을 현장에 투입해 약 1시간 만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지만, 인화물질로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사상자가 늘었다.

이번 화재로 자녀들의 방학을 맞아 서울로 여행을 온 박모씨(34)와 14세·11세 딸 등 세 모녀, 1층 출입문 옆 객실에 투숙하던 이모씨(62) 등 총 6명이 숨졌고, 4명이 다쳤다. 역시 1층 객실에 묵었던 김모씨(54)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하루 뒤인 21일 숨졌다.

해당 여관에는 비상구가 없어 투숙객들의 대피로가 확보되지 않고, 화재 시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나, 연기나 불꽃을 자동으로 감지해 경보음이 울리는 자동화재탐지설비 등이 설치되지 않은 점도 인명 피해가 커진 원인이 됐다. 이 여관은 1964년 사용 승인을 받아 50년이 넘은 낡은 벽돌·슬래브 건물로, 지상 2층 규모에 옥상 가건물을 얹은 형태다. 객실 출입문은 나무로 돼 있었고, 건물 안에는 이불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았으나 화재 발생 시 자동으로 물을 뿌려줄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해당 여관에는 화재 발생 시 사람이 직접 누르면 경보음이 울리는 비상경보설비만 있었다”면서 “소형 건물이라 연면적상 스프링클러나 자동화재탐지설비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피로가 없었던 점도 피해가 커진 이유다. 화재 당시 투숙객들은 옥상 가건물 때문에 옥상으로 대피할 수 없었다. 건물에 후문이 있긴 했지만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데다 비상구가 아니라 다른 건물로 연결된 통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유일한 탈출로인 여관 입구가 화염에 휩싸인 상황에서 탈출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사망자 6명 중 5명이 여관 출입구에 바로 인접한 1층 객실에 묵고 있었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숨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사망자 6명에 대한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휘발유를 뿌리면 유증기 형태로 공중으로 번지기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퍼진다”면서 “좁고 노후화된 건물이라 피해가 커졌다”고 밝혔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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