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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정동칼럼]올림픽정신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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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평창 올림픽에 20명 이상의 북한 선수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논란이 되었던 여자 아이스하키 팀에는 무려 12명이 합류한다. 남북 단일팀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와 조직위가 애를 많이 썼고, IOC도 적극적으로 협조한 결과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감 때문에 참가를 꺼리는 선수나 국가가 적지 않았고 올림픽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도 저조했던 터라 북한의 참가는 여러모로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상처도 많다. 단일팀만 구성되면 국민의 환호를 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정부는 반대여론이 거세자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단일팀’이라는 단어의 함의가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의 국민적 환영만을 기억한 듯하다.

총리는 기자 시절 경험했던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언급하기도 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우승을 이뤄낸 ‘사건’은 큰 감동이었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흘렀고 상황도 많이 변했다. 지금의 20~30대는 1991년은커녕 2002년도 잘 기억하지 못하거니와, 기억하더라도 총리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한다. 군사적 도발과 강경대응이 반복된 지난 10년의 경험이 미친 영향도 크다. 국민들의 감정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는 점을 정부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단일팀 논란에서, ‘민족’이나 ‘평화’는 ‘공정성’을 압도하지 못했다.

또 다른 오해가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의 올림픽이 순수한 평화의 제전이 아님을 잘 아는데 정부는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한다. 정치와 자본의 힘을 익히 인지하는 이들에게 올림픽정신 운운하는 것은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사이 나쁜 친척과 설에 만나 윷놀이 한번 한다고 해서 금세 다시 절절한 피붙이가 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오해의 정도는 야당이 더 컸다. 단일팀 구성에 국민들이 시큰둥하니, 조직위 위원이기도 한 야당 국회의원은 IOC에 단일팀 구성을 불허해달라는 서한을 보내 사람들을 당황시켰다. “올림픽헌장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성 원칙을 위반”한다는 언술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주지 않는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승리보다는 참가에 의의” “스포츠로 세계 평화를” 같은 슬로건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쿠베르탱 남작이 말한 평화는 백인 남성만의 평화였다. 그는 유색인종과 여성이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을 마뜩잖아 했다. 1936년,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철저한 정치 선전의 마당으로 이용했고, 이후 올림픽과 이데올로기는 분리되지 않았다. 서방세계가 보이콧했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공산권 국가들이 거부한 1984년 LA 올림픽 때는 ‘참가의 의의’도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1990년대부터 프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참여를 시작한 이후 올림픽은 ‘아마추어 스포츠 제전’이라 불리기 어려워졌다. 올림픽은 테러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전쟁도 잠시 쉬었다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말 그대로 고조선 시대 이야기다. 솔직하자면, 오늘날 진정으로 존재하는 올림픽정신은 없다.

올림픽은 하나의 국제적 메가 이벤트일 뿐이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땀과 성취에 감동하지만, 그 뒤에서는 IOC와 방송사, 거대기업들이 이권을 챙긴다. 그러니 올림픽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정부와 조직위는 국민들에게 재미와 감동이 있는 행사를 싸게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싼 볼거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경기장이나 도로 건설에 투여된 막대한 경비가 모두 세금이고, 앞으로의 유지비 또한 결국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2014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인천시가 기존의 문학경기장을 증축해서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는 안을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신축 주경기장 예정지였던 인천 서구 국회의원은 삭발을 하며 반발했고, 지금 5000억원짜리 아시아드주경기장은 연 수십억원의 유지비를 까먹으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며칠 전에야 인천시는 이 경기장을 워터파크와 유스호스텔, 영화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어제 영국의 가디언지는 한 스키 리조트에 관한 화보 기사를 실었다. 평창 올림픽 개최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며 보여준 사진들은 깨진 창문, 수풀에 버려진 스키 한쪽, 녹슬고 폐허가 된 실내 수영장, 간판 글자가 떨어져나간 노래방 등이었다. 12년 전 문을 닫은 알프스 스키장이다.

기사는 한국의 스키 인구가 680만명에서 5년 만에 480만명으로 급감했음과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갈등을 지적하면서, 사진으로 평창 올림픽 시설의 미래를 암시한다. 이 기사는 저주가 아닌 경고다. ‘민족’과 ‘평화’의 포장 아래 단일팀 홍보만 하다가 정작 사람들이 무엇을 주목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갖는지는 무시하는 일이 또 생겨서는 안된다는 경고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평창 올림픽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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