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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남산'부터 '빨간 마티즈'까지…국정원 흑역사,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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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뀌는 국정원…4번째 명칭 변경 중정, 안기부, 국정원…이름은 바뀌었지만 정권 보위 역할은 늘 그대로

아주경제

지난 18일 자살한 임 씨가 숨진채 발견된 차량. (연합뉴스 자료사진)



"빨간 마티즈 조심하세요." 한때 정부를 비판하는 취지의 게시물에 으레 달리던 댓글이다. '마티즈 댓글'의 기원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당시 야당과 일부 언론은 국가정보원이 스마트폰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 사찰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후 직접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이용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는 빨간색 마티즈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살이라는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정황들이 발견되자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정원이 사건의 전말을 숨기기 위해 직원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이러한 음모론은 큰 호응을 얻었다. 빨간 마티즈는 그렇게 국정원에 대한 여론의 불신을 방증하는 상징이 됐다.

과연 이번에는 불신을 떨칠 수 있을까. 국정원이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간판을 바꾼다. 1999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정원으로 재출범한 지 정확히 19년 만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14일 국정원의 개혁 방향에 대해 "국내 정치와 대공 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 수준의 전문정보기관으로 재탄생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할 예정이다. 또한 국내 정치 정보의 수집이 금지되는 한편, 국회 및 감사원의 통제를 받게 된다.

이같은 명칭 변경은 업무 분야를 '대외안보'로 명확히 함으로써, 정치 개입의 여지를 차단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도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중앙정보부에서 대외안보정보원으로 이어지는 개명의 역사는 곧 초법적 거대 정보기관이 몸집을 줄이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어도 정권의 보위기관이라는 꼬리표를 떼내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이름만 KCIA, 실제는 CIA+FBI…중앙정보부 시절(1961~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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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직원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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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는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6월 시작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끄는 군부 세력은 쿠데타를 성공시킨 뒤 한 달도 채 안돼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초대 중정부장을 지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증언록을 통해 "중정은 내가 직접 창설했다. 국가정보기관의 기본적 임무를 수행함은 물론 새로운 혁명 질서에 장애가 되는 세력들을 치우는 일을 했다. 혁명 과업을 완수하고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고 회고했다.

중정이란 이름은 미국의 국가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중정의 실제 권한은 CIA에 FBI를 합친 수준이었다. 구 소련의 비밀첩보기관인 KGB에 더 가까웠다"고 지적했다.

중정은 정보수집권에 수사권까지 쥔 채 공작과 고문까지 서슴치 않았다.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 사건 등 간첩조작 사건은 당시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박 전 대통령에 비판적인 이들이라면 신분을 막론하고 납치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프랑스에서 실종된 이후 2007년이 되서야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 조사를 통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해 중정 주불(駐佛)거점이 파리 현지에서 현지의 제3자를 고용해 살해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반혁명' 세력으로부터 혁명을 보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중정은 자연스럽게 공포 정치의 대명사가 된다.

◆막후의 기획자…국가안전기획부 시절(1981~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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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때문에 중정은 간판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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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는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위기에 처한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이가 다름아닌 김재규 중정부장이었기 때문이다. 군사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중정을 대통령 시해 집단으로 낙인 찍고,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한다.

그러나 안기부가 주춤한 것은 잠깐이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적 안정이라는 정보기관 존립의 최우선 목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김 전 국장의 설명이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업무 방식은 그대로였다. 안기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활용해 정보기관 수준을 넘어서 정권의 '배후'가 됐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인권보고서를 통해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관계부처 장관의 발의로 안기부장이 소집해 주 2회 정도 안기부 별관이나 호텔 등지에서 화합을 하는데, 비록 법령상 의결권이나 정책집행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참석자들의 수준에 비춰볼 때 협의된 내용은 사실상 정부당국의 정책 결정과 같은 효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민주화 이후의 안기부의 활동 방식은 더욱 교묘해졌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미림팀'의 존재다. 안기부 내 도청 전담 조직인 미림팀은 한정식집이나 호텔 음식점 등의 직원을 포섭해 정보원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1년에 5000명 이상의 유력 인사들을 사찰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림팀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드러났다.

◆정보기관으로 재탄생 꿈꿨지만…국가정보원(199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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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2020년 12월 출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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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뒤에 안기부는 다시 한 번 간판을 바꾼다.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가 중정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당사자다. 김대중 정부는 안기부의 명칭은 물론 원훈까지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수술에 나선 것은 필연적이다.

김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이란 이름은 물론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원훈까지 일관되게 '정보'를 강조했다. 표면적으로는 "무한경쟁시대인 21세기를 대비하는 상황에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인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국내 정치 개입을 원천적으로 막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표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정권 집권 이후 다시 국정원은 정권의 보위 역할에 충실했다. 대선캠프 출신 최측근을 수장으로 임명하며 착실히 장악한 덕분이다.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18대 대선 댓글조작 사건은 물론 과거에나 볼 수 있었던 간첩조작 사건 또한 재등장했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음란물과 합성한 사진을 퍼뜨리기도 했다. 30대 원세훈, 31대 남재준, 32대 이병기 전 국정원장은 모두 감옥에 있다. 33대 이병호 전 원장 또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백준무 기자 jm100@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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