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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거래소 폐쇄→실명제 도입' 가상화폐 규제 방향 전환…과세방안 급물살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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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불법 거래 근절에 역점”…거래소 폐쇄 후순위로 밀려

법무부가 가상화폐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추진했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는 사실상 좌초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협의와 의견 조율을 거쳐 거래소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폐쇄 발언 이후 여론의 거센 반발을 감안하면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신 정부는 가상화폐 실명제 등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실명 확인이 인증된 가상화폐 관련 거래에는 은행 계좌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거래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보다는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자금세탁과 탈세 등 불법행위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불법·투기적인 가상통화 거래를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방향이 가상통화에 대한 과세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맞춰질 것으로 전망한다. 세금을 부과하면 과도한 투기수요 유입을 억제할 수 있고, 과세 정보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거래 내역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면 불법적인 거래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 "거래소 폐쇄는 법무부案"…박상기 법무부 장관 발언 뒤집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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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정기준 경제조정실장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통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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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5일 발표한 ‘가상화폐에 대한 정부입장’에서 법무부가 제시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안이 확정된 게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법무부 장관이 언급한 거래소 폐쇄 방안은 특별대책에서 법무부가 제시한 투기억제 대책 중 하나로 향후 범정부 차원에서 충분한 협의와 의견조율 과정을 거쳐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거래소 폐쇄안은 정부 부처 간에 조율된 안이라고 말했지만, 불과 나흘만에 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이 주도해 만든 특별대책에서 합의한 것은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정도의 지점이었는데, 박상기 장관 발언이 ‘거래소 폐쇄를 합의했다’는 의미로 와전된 측면이 있다”면서 “이날 국무조정실 발표는 이를 바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통화의 투기적 거래가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에 달하면 거래소 폐쇄는 검토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이지만 다른 나라 사례 등을 감안하면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거래소 거래를 금지했지만 홍콩에서는 거래소 거래를 허용하고 있어 사실상 우회로를 만들어놨고, 일본은 거래소 거래를 양성화했다”면서 “만약 법무부안이 추진됐으면 우리나라가 거래소 거래를 전면 금지한 유일한 사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가상화폐 투자 자기 책임" 강조…거래금지 정책에서 전환

실제로 이날 정기준 실장이 발표한 입장문을 보면 종전과 달라진 정부 시각이 포착된다. 정부는 “가상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행위·투기적 수요, 국내외 규제환경 변화 등에 따라 가격이 큰 폭으로 변동해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가상화폐 채굴, 투자, 매매 등 일련의 행위는 자기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번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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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의 한 가상화폐거래소에 게시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시세.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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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책임을 강조한 대목은 거래소 폐쇄 등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종전의 규제 논의에서는 나오지 않은 표현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가상통화 거래소를 폐쇄하더라도 개인 간 거래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그럴 바에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규제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표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의 산업적 측면을 강조한 대목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정부는 “과도한 가상통화 투기와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하지만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원하고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화폐 거래에 날선 비판을 이어왔던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정부가 규제하려는 대상은 블록체인 기술 개발과 가상통화 그 자체가 아니라 과도한 투기적 거래”라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의 산업적 가치 등을 강조하며 “혁신성장을 측면에서 무조건적인 가상화폐 거래 금지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던 기획재정부의 시각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 “가상화폐 실명제 차질없이 추진”...과세방안 추진될 듯

정부가 “가상화폐 실명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한 대목도 주목해야 한다. 가상화폐 실명제는 국무조정실이 12·28 대책에서 발표한 규제의 핵심이지만,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를 주축으로 설립된 블록체인 협회가 제시한 자율 규제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 이후 가상화폐 거래계좌의 실명 확인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했던 신한은행 등 은행권이 이를 철회하거나 중단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정부의 언급은 가상화폐 거래 계좌 실명확인 시스템 도입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낮춘 것으로 평가된다. 실명이 인증된 가상화폐 거래에 은행 계좌 사용이 허용되면 음성적인 거래가 걸러지는 등 가상화폐 거래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제 논의 방향이 ‘가상화폐 과세 방안’에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로 인한 소득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점에는 거의 모든 정부 부처가 동의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 부여가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과세 방안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거래소 폐쇄 등 거래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이 정부안으로 추진됐다면 가상화폐 과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상황이었다”면서 “거래소 폐지안이 사실상 후순위로 밀린만큼 과세 논의가 본격화될 토대가 형성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과세 방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은 그동안 금융당국의 반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유사수신업으로 묶으려고 했던 것에는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이 아닌 일반상품으로 규정하려는 인식이 깔려있다. 반면 게임머니 등 일반상품처럼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안은 거래소 등의 반발이 걸림돌이었다.

정부에서는 가상통화를 통해 얻은 이익을 종합과세 대상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는 일본 사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20만엔을 초과하는 가상화폐 관련 투자 이득이 발생할 경우 자신 신고를 받아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재산세와 마찬가지로 관련 소득과 자산이 있는 경우 과세하는 방안이 논리적으로 가장 명쾌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자진 신고를 통해 세원을 파악한다는 것은 투기 억제 차원에서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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