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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박종현의 아메리카 인사이드] “거지소굴?” 아이티가 분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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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출신 작곡가, 배우, 학자 등이 미국에 끼친 영향 막강

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거지소굴’(shithole)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아이티는 중앙아메리카에 자리했다. 프랑스령을 거쳐 1804년 독립을 선포한 인구 1000만명 남짓의 작은 나라이다. 이후 미국의 군사개입 등으로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아이티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기가 찰 노릇이다.

아이티 이민자들이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크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기조로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 오히려 아이티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칼럼니스트인 데이빗 폰 드레흘은 1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칼럼에서 “대통령이 ‘왜 이런(거지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했다”며 “답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건국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들과 그들의 후손이 우리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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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투생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할 만한 엘리트 출신도 각 분야에서 차고 넘친다. 아이티 출신으로는 사회사업가로 이름을 알린 피에르 투생이 시작을 알렸다. 투생은 필라델피아에서 헌법제정 회의가 열리던 1787년 아이티 출신 이민자로 뉴욕에 도착했다. 투생은 이후 뉴욕 최초의 헤어스타일리스트로 변모했다. 사업에 성공한 뒤에는 고아들과 난민들을 돌보았으며, 뉴욕 최초의 가톨릭성당 건립 사업에도 힘을 보탰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뉴욕을 방문한 1996년 성인의 품위를 받았다. 투생이 미용실의 견습생 시절을 보내던 1803년 미국사에 족적을 남긴 또 한명의 아이티 이민자가 미국 땅을 밟았다. 바로 조류학자로 이름을 남긴 존 제임스 오듀본이다. 오듀본의 평생의 역작 ‘미국의 새들’은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1150만달러에 낙찰될 정도로 값진 작품이다. 그의 이름을 기린 ‘오듀본 소사이어티’는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소재한 ‘트럼프 내셔널’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클럽들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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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모로 고트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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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E. B. 두 보이스


아이티 출신 이민자는 음악계에도 이름을 남겼다. 아이티 이민자의 아들로 루이지애나주에서 태어난 루이스 모로 고트샤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코트샤크는 피아노 신동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는 서인도제도, 쿠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음악적 재료와 유럽의 기풍을 혼합해 새로운 낭만주의 음악을 선보였다. 코트샤크의 선구적인 공헌이 없었다면 ‘재즈’ 장르의 탄생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코트샤크가 명성을 얻던 시기인 1868년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윌리엄 에드워드 버가트 두 보이스가 태어났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를 둔 보이스는 하버드대학에서 흑인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흑인들이 마주한 삶의 현실을 고찰했으며, 남부 지역의 노예해방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흑백차별 해소에 노력한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는 보이스의 출생 100주년을 맞은 1968년 그의 헌신을 기렸다. 미국 사회학자협회는 그의 이름 ‘WEB 부 보이스’를 딴 최고 영예의 상을 제정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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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포이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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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필스 에임


아이티 출신은 영화계에도 족적을 남겼다. 1964년 ‘들판의 백합’으로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인공이다. 포이티어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바하마에서 자랐지만, 그의 이름은 포이티어가 아이티 노예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밤의 열기’ 등 숱한 영화에 출연하며 차별 철폐에 공헌했다. 포이티어가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려가던 1961년 뉴욕 브롱스에서는 레지 필스 에임이 태어났다. 닌텐도 아메리카 대표로 게임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에임은 지난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로 또한번 선풍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뉴욕 할렘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존슨 형제와 정신과 의사인 앨빈 프란시스 포우세인트 하버드대 의대 교수 등 많은 아이티 이민자의 후손들이 미국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워싱턴=박종현 특파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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