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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회사 살리려 했는데"…'배임'과 '경영판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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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MT리포트-배임죄②]대법 판례로 본 배임죄 "회사 공동의 이익 위한 결정은 배임 아냐"]

SPP 사건서 계열사 내부지원 배임 기준 제시

"절차적 문제 있어도 사익 추구 안 해 죄 못물어"

가족회사 짓는데 계열사 돈 쓴 파고다는 유죄


머니투데이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재판에서 유무죄를 예상하기 가장 어려운 죄목 가운데 하나가 '배임'이다. 계열사를 동원해 특정 회사를 지원했다가 계열사가 손해를 본 경우 특히 문제가 복잡하다.

경영진이 사익을 위해 회삿돈을 쓴 것인지,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영상 판단을 내렸는데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었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결국 과거 대법원 판례가 유일한 기준일 수 밖에 없다.

◇"회사 공동의 이익 위한 결정은 배임 아냐"

12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해 11월9일 선고한 이낙영 전 SPP그룹 회장 사건(2015도12633)을 통해 처음으로 어떤 경우에 계열사 내부지원을 배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이 사건에서 이 전 회장은 SPP조선을 동원해 자금난에 빠진 다른 계열사들에게 철강 원자재를 사줘 SPP조선에 1273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이사회나 주주총회 결의도 없이 SPP조선의 자금을 대기로 한 점 △이 과정에서 채권단에 대한 보고 의무도 어긴 점 △계열사들이 나중에라도 원자재 대금을 갚을 능력이 없었음을 알고도 지원을 강행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계열사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판단이었는지 △어떤 회사가 지원을 받을 것인지를 객관적, 합리적으로 결정했는지 △지원이 정상적이고 합법적이었는지 △지원하는 회사가 위험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는지 등을 고려해 배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런 기준에 따라 이 전 회장을 무죄로 판단했다. 절차적인 문제가 다소 있었고 결과가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전체의 이익을 위한 일이었다면 죄책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이나 기업평가기관에서 계열사들의 사업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계열사들의 성장을 통해 그룹 차원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사익 위해 회사 동원했다면 손해 메웠어도 배임"

반면 박경실 파고다교육그룹 회장의 사건(2016도10092)에서 대법원은 특정인의 사익을 위해 회사 지원금을 짜냈다면 나중에 지원금을 반환해 손실이 메꿔졌더라도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박 회장은 새 학원이 들어설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파고다아카데미를 연대보증인으로 내세워 231억원을 대출받고 이 회사 자금 254억원을 더 끌어다 쓴 혐의를 받았다. 이 건물은 박 회장의 가족회사인 파고다타워종로의 소유로 지어졌다.

대법원은 △박 회장이 가족회사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한 점 △계열사 자금을 끌어다 쓰면서 돌려줄 방안은 전혀 확보하지 않은 점 △이사회 동의자 주주들의 승인이 없었던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또 파고다타워종로가 빌려쓴 자금을 일부 반환했더라도 이는 나중에 일인 만큼 배임죄 성립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경영상 판단을 보다 폭넓게 인정해주는 추세"라며 "과거에는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배임죄 성립의 유력한 증거로 보는 판례가 많았는데 최근엔 여러 회사의 공동이익을 위한 일은 아니었는지, 회사에 손해가 났더라도 추후에 이익을 기대할 측면이 있지는 않았는지까지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그런 위험이 있었다면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게 기존 판례인데, 최근 대법원은 여기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그러한 위험이 '실질적인 개연성이 있는 것인지'까지 엄밀히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훈, 황국상, 송민경(변호사) 기자 ninachum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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