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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애관극장 살리기’ 나선 인천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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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통 국내 최초 실내극장… 멀티플렉스에 밀려 매각설 돌자

시민모임 결성 “문화유산 지켜야” 市도 “공공시설로 보존 방안 검토”

동아일보

매각설이 불거지고 있는 120년 전통의 국내 최초 실내극장인 인천 중구 애관극장의 현재 모습(왼쪽 사진). 6·25전쟁 때 소실돼 다시 지은 1960년대 애관극장 모습. 외관과 뼈대는 거의 그대로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인천시 제공


영화 ‘1987’에서 대학생 박종철 고문에 가담한 형사의 아버지 역을 한 배우 이상희 씨(57)는 인천 중구 애관극장 단골이다. 아내와 함께 1주일에 한 번꼴로 애관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다. ‘남한산성’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그는 고향인 인천에서 극단 ‘사랑마을’을 운영한다. 이 씨는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점 영화관보다 학창시절 추억이 많이 묻어 있는 애관극장에서 꼭 영화를 감상한다. 스크린이 큰 1관보다는 소극장처럼 작고 아담한 2∼6관이 좋다”고 말했다. 이 씨는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이 경영난에 처했다는 얘기에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인천참여예산센터 같은 시민단체 회원과 변호사, 예술인 등 100여 명은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애사모)’이란 단체를 만들어 애관극장 살리기에 나섰다. 국내 최초 실내극장을 이렇게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애사모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인천의 소중한 건축 자산인 애관극장을 인천시가 매입해 공공문화 유산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애관극장 매각협상 사실을 처음 알린 향토사 연구자 A 씨는 “소유주가 애관극장 전통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지인에게 ‘극장을 팔아야겠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애관극장 현황을 조사한 인천시 관계자는 “애관극장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물을 담보로 상당한 금융부채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애관극장 관계자는 “경영난에 따른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애관극장의 전신은 협률사(協律舍)로 1895년 인천 경동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 최초의 실내극장인 협률사(協律社)가 1902년 문을 열었으니 이보다 7년이 빠르다. 서울 협률사는 황실과 국고 지원으로 지었지만 인천 협률사는 객주 출신의 ‘인천 부자’로 통했던 정치국(丁致國)이 세웠다.

벽돌로 지은 인천 협률사는 개관 무렵에는 남사당패나 성주풀이 같은 전통 악극을 공연했다. 1910년 신파극을 선보이며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을 바꿨다. 1921년에는 서양영화를 주로 상영하며 연극도 공연하면서 이름을 애관(愛館)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극작가 함세덕 진우촌과 연기자 정암 등 인천 문화계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 6·25전쟁 때 소실된 뒤 1960년 현재 모습으로 지어 애관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인천 시네마거리가 형성됐다. 1980년대까지 주변에 미림 인영 현대 자유 키네마를 비롯해 극장이 20곳 가까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 열풍이 불면서 모두 문을 닫았지만 애관극장만은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극장 소유주가 매각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만큼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 세실극장처럼 폐쇄되지 않고 영화사를 잘 간직하는 공공시설로 보존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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