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서번트 증후군 연기한 박정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서번트 증후군은 특별한 자폐증이다. 전반적인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음악, 미술, 수학 등에서 비범한 힘을 보인다. 이를 표현하는 배우에게는 고난도 연기가 필요하다. 지적 장애와 유별난 재능을 동시에 그려야 하는 어려움. 단순한 행동이 우스개로 비춰질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배우 박정민(31)은 4개월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특수학교를 찾았다. 사회복무요원과 함께 자폐증 학생 다섯 명의 수업을 도왔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속 오진태를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였다. 어떤 물음에도 로봇처럼 "네"라는 말만 반복하는 젊은이. 기억력은 남다르다. 어려운 곡도 악보 없이 척척 피아노로 연주한다. 박정민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의 장애를 관찰하고 따라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특징들만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은 희화화되기 쉽다. 그것만이 내 세상과 같은 코미디 장르라면 더욱 그러하다. 박정민에게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는 "관객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는 선을 넘지 말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했다. "지적 장애를 부각하고 싶지 않았고, 촬영하면서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의 순수함과 엉뚱함만 전해도 충분하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시선, 리듬 등 몇 가지만 일반인과 달리 했다. 표현 수위를 낮추고 준비했던 많은 연기들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계획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작업도 있었다. 피아노 연주다. 몇몇 장면을 대역과 컴퓨터그래픽 없이 롱테이크(하나의 쇼트를 길게 촬영하는 것)로 촬영했다. 박정민은 오진태처럼 악보를 읽을 줄 모른다. 차이코프스키의 '1번 협주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 등 여덟 곡을 실감나게 전하려면 일일이 건반의 순서를 외워야 했다. 그는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한 한지민(36) 누나가 '젓가락 행진곡'을 열심히 연마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짜 연주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연주하는 신이 그렇지 않은 신보다 풍성한 느낌을 준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 집과 연습실에서 6개월 동안 손가락이 부러져라 연습했다. 얼마나 기운을 뺐는지, 촬영을 마치고 한동안 피아노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웃음)."
그것만이 내 세상은 자폐증 청년의 장애 극복기가 아니다. 난생 처음 보는 형 김조하(이병헌)와 함께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떠나보내면서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는 드라마다. 베리 레빈슨 감독(76)이 1988년 연출한 '레인 맨'과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더스틴 호프만(81)이 연기한 레이몬드 배빗도 서번트 증후군 환자다. 잇단 돌출 행동으로 아버지의 유산을 탐내는 동생 찰리 배빗(톰 크루즈)의 속을 태운다. 찰리는 숫자를 모조리 외우는 형의 비상한 능력으로 카지노에서 큰돈을 따면서 마음을 연다. "칩을 걸 때는?" "나쁘면 하나, 좋으면 둘." "그렇지, 좋으면 둘이야." 이 대사는 형제가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마지막 신에 다시 등장한다. "곧 보러 갈게." "그래, 하나는 나쁘고 둘은 좋지." "당연히 둘이 좋지." 자폐증을 앓지만 동생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해석으로 많은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것만이 내 세상에도 비슷한 해석을 가미할 여지가 있었다. 오진태가 형과 함께 찾은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어머니 주인숙(윤여정)의 앙상한 얼굴을 마주한다. 그의 얼굴에서 감정의 변화는 찾아볼 수 없다. "아직도 형이 무섭니?" "네." "그래도 생기니까 좋지?" "네." "진태는 누구를 제일 사랑해?" "한가율(한지민)." 박정민은 "엄마가 죽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 더 슬프게 전해질 것 같았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김조하가 '엄마 보고 싶냐?'라고 물을 때 눈물을 흘려야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오진태의 흐름이 단번에 깨질 것 같아서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감정을 절제해도 가여워 보이는데, 눈물까지 흘려버리면 반칙이다." 자폐증 환자의 이해력이 낮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도 아니다. 박정민은 모든 감정을 피아노 연주에 실었다. "불안한 마음을 피아노로 달래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곧 오진태의 세계다. 그 연주에서 꼭 진심이 전해졌으면 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