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7 (월)

낙태한 산모, 상속자격 있을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편집자주] 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the L][고윤기 변호사의 상속과 유언 이야기]]

머니투데이

염수경 추기경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낙태죄 폐지 논란이 뜨겁습니다. 폐지를 청원하는 온라인에서의 청원도 활발하고, 반대로 폐지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이나 여론의 기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에 종교단체 특히, 천주교에서는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대국민 운동으로 확대하는 등 낙태죄 폐지 청원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때를 틈타 평소에는 낙태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전문가랍시고 한두 마디 씩 언론에 던져 댑니다. 이렇게 온라인에서만 논의되던 것들이 오프라인으로 확대돼 갑니다.

‘낙태’는 상속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쟁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속결격과 관련된 문제인데요. 상속결격자라는 것은 원래는 재산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재산상속을 받을 자격이 없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부인 A씨는 임신 4주째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A씨는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태아를 낙태하게 됩니다. 당시 A씨의 남편에게는 부모님이 계셨는데, 남편의 부모님은 A씨가 낙태를 했기 때문에 A씨는 죽은 남편의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상속의 문제는 “누가 상속인인가”와 “얼마를 상속받을 수 있는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사례는 “누가 상속인인가”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사례에서 A씨의 시부모님은 A씨가 죽은 아들의 상속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 이런 주장이 나왔을까요? 이 문제는 우리 민법에서 ‘태아’의 법적 지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민법의 상속순위에 따르면, 남편이 사망하면, 자식과 부인이 1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그런데 태아도 자식으로 보아 상속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태아도 살아서 출생하면 상속권이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상속순위와 관련해서는 태아를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민법 제1000조 제3항). 사례에서 남편이 사망한 경우 태아는 부인 A씨와 같은 1순위의 상속인이 되어 남편의 재산을 부인이 3/5, 태아가 2/5의 비율로 상속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민법 제1004조 제1호는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를 상속결격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살해한 아들은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고, 남편이나 자식을 살해한 부인은 남편의 재산을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례에서 경우 부인 A씨가 뱃속에 있는 태아를 낙태하면, 상속 동순위에 있는 자식을 살해한 것이 되어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는 상속결격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 대법원은 “태아가 재산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경우에 그를 낙태하면, 민법상의 상속결격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태아를 낙태한 부인 A씨는 ‘상속결격’이 되어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고, 남편의 재산은 모두 시부모님이 상속을 받게 됩니다. 좀 가혹한 면이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 민법에서 상속과 관련해서는 태아를 사람과 동일하게 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머니투데이

고윤기 변호사(ygkoh@kohwoo.com)는 로펌고우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상속, 중소기업과 관련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00인 변호사,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회 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할 법률이야기’, ‘스타트업을 위한 법률강연(법무부)’의 공저자이다.

고윤기 변호사(로펌 고우) gshwang@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