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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新견생열전` 능청 입양견과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동상이몽] 수리는 위임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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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의 위임신 증상이 보름째 계속되고 있다. 생식기와 젖꼭지가 꽤 부푼 상태로, 평소보다 훨씬 유난스럽게 냄새를 탐하고 저보다 네 배는 더 큰 개와 요상한 암호를 주고받고, 음식 투정이 더욱 심해진 데다 틈날 때마다 생식기를 핥는다. 안쓰럽다가도 정도가 심하면 야단을 치는데, 멘탈 갑 수리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 볼일에만 집중하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Tip 위임신의 원조는 늑대 동물학자들은 반려견의 위임신 이유를 개의 조상인 늑대에게서 찾는다. 늑대는 무리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암컷이 임신을 하면 서열이 낮은 암컷들도 따라서 젖이 불어 오는데, 이는 여러 암컷이 공동으로 새끼를 돌보며 개체를 보존하려는 생존 전략이라고 한다.

시티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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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위임신’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증상이 다양했다. 수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지만 실제로 배가 불러오거나 유즙이 나오기도 하고, 출산을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고 인형을 가져다 새끼처럼 돌보기도 한단다. 개중에는 신경과민 증상과 공격 성향을 드러내는 반려견도 있다고 하니, 수리 정도면 무척 고마운 수준으로 힘든 시간을 통과하는 것이다.

위임신 기간의 수리는 일단 정신없이 냄새를 맡고 다닌다. 집 안에서는 방이고 거실이고 구분 없이 구석구석 코를 씰룩이며 탐색에 열중하는데 저러다 코 근육에 쥐라도 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정도다. 집 밖에 나가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목을 쭉 빼고 땅바닥을 킁킁, 풀숲에 머리를 박고 킁킁, 담 모퉁이를 따라 킁킁, 전봇대에 콧물로 그림을 그리며 킁킁. 킁킁킁킁의 연속이다.

교차로를 뱅뱅 돌며 맡은 데 또 맡고, 인도 양쪽을 지그재그로 섭렵하며 맡고, 그러다 갑자기 대단한 냄새라도 감지한 듯 전력 질주하다가 급히 방향을 바꿔 지금까지 온 길을 거슬러 달린다. 덕분에 나는 수리 가슴줄에 매달려 아침저녁으로 길바닥에서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다.

평소 수리는 멀찍이서 개 그림자만 비쳐도 암컷이건 수컷이건 크건 작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망부터 간다. 그런데 며칠 전 동네 작은 공원을 산책하던 중 사건이 일어났다. 공원과 주택가 담벼락 위에서 커다란 검은 개가 수리를 내려다보고 짖자, 시종 킁킁거리기만 할 뿐 묵언수행으로 일관하던 수리가 그 개를 바라보고 앉아 낑낑대는 게 아닌가! ‘왕왕’ ‘끼잉끼잉’ 하며 둘이서 암호를 주고 받느라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데, 동거력 5개월 동안 수리가 다른 개와 교신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한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위임신의 위력이란 이 정도인 것인가, 하고.

본디 사료 보기를 돌같이 하는 수리는 이 기간 중 입이 더 짧아졌다. 그러나 간식 욕구는 더욱 강해져, 눈을 희번덕거리고 두 발로 깡총거리다 간식을 덮치면서는 내 손을 깨물기도 한다. 내가 ‘아야!’ 하고 아픈 시늉을 해도 아랑곳 않고 어서 다음 간식을 대령하라고 보챈다. 집착과 도발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간식이 바닥나면 안면을 싹 바꾸고 무심하게 킁킁 모드로 복귀해 버린다. 그러는 한편 생식기 핥기는 여전해서 저러다 더 자극을 받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료를 뒤지니 위임신을 경험한 반려견은 그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고, 자궁축농증과 유선종양에 걸릴 위험도 높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발정기 때마다 위임신 증상을 보이면, 반려견이나 반려인 모두의 스트레스를 덜기 위해서라도 의사와 상담해 중성화수술을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중성화수술이라. 유보해 왔던 고민이 바짝 닥친 기분이다. 이번 수리의 위임신이 내게는 처음이지만, 적어도 여섯 해를 산 수리니까 일반적이라면 최소 열 번의 발정기를 겪었을 터인데. 역시 또 수리의 과거를 두고 다시 깜깜해지는 나다. “수리 너 매번 이러는 거니? 아니면 이번만이니?” 답답한 마음에 수리를 붙들고 물어보지만, 위임신 중인 수리한테 나는 잠시 투명인간이니까.

[글과 사진 이경혜(프리랜서, 수리 맘)]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8호 (17.12.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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