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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런치리포트]보수의 몰락-②버림받은 보수(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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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노인정당' 거부하는 50대의 반란…"안희정·김부겸 있는데 왜?"





머니투데이







조기 대선을 3개월여 앞둔 올 2월 초. 작은 이변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안희정 충남지사 지지율의 급등 현상이었다. 1주일만에 9%포인트가 오른 19%를 기록했다. 대세론의 문재인 민주당 후보도 긴장케 한 수준이었다.

눈길을 끈 것은 연령별 지지율이었다. 안 지사의 급부상을 이끈 주역은 바로 50대였다. 연령별 지지율 현황에 따르면 20~40대에선 ‘문재인’, 60대 이상에선 보수 진영 잠재 후보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1위였다. 전형적인 ‘보수 대 진보’ 구도였다. 그러나 50대에서 이 구도를 깨고 야권 후보에 눈길을 줬다.

50대의 ‘변심’은 안 지사에 대한 지지를 변곡점으로 최종 대선 결과까지 이어졌다. 안 지사가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 50대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정당 인사가 우세로 올라선 적은 없다. 대선 투표 직후 이뤄진 출구조사에서 50대의 36.9%가 문 후보를 뽑았다. 문 후보를 포함,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 총합은 70%에 육박했다. 반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50대 득표율은 27%에 그쳤다. 50대가 보수를 버린 셈이다.

안 지사를 비롯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사실상 문 대통령에 맞설 보수 후보 포지션을 잡은 것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50대의 대안 찾기가 보수 진영 밖에서 이뤄졌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 사회에서 50대는 20~30대 진보 성향을 거쳐 40대를 거친 뒤 본격적으로 보수화에 접어드는 세대였다. 특히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의사결정 주도권을 쥔 세대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주류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대로도 여겨진다.

50대의 탈(脫)보수 경향이 고착화된다면 보수는 그야말로 선거 때마다 가장 영향력있는 ‘고객’을 뺏기는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50대의 탈보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4월 20대 총선 때부터 50대의 이상 징후는 확인됐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어 160석 이상의 대승을 거둘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결과는 민주당의 1위였다. 그 충격 뒤엔 50대의 반란이 존재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50대는 새누리당에 51%의 지지를 보냈다. 야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40%였다. 그러나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50대 지지율은 39.9%로 급락했다. 대신 민주당을 비롯한 야3당의 지지율이 53.7%를 기록, 50대의 보수정당 우위 성향이 뒤집혔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 보수정당을 꾸준히 지지해 왔다는 50대 한 남성은 50대와 60대의 확실한 구분을 이유로 든다. “60대 이상의 지지를 위한 북풍몰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나이든 사람만 바라보는 정당은 이제 죽은 정당이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모습 그대로면 사멸할 정당밖에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보수정당의 50대 정치인들이었다.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 등은 보수정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선 잠룡들이다. 이들이 주목한 50대의 탈보수 추세는 ‘86(60년대생, 80년대 학번)’세대가 본격적으로 50대에 진입해 보수진보 구도의 세대 구성이 변화한 점이다.

50대인 옛 새누리당 인사는 “지금의 50대는 예전의 50대와 달리 독재정권에 저항한 세대적 경험을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며 “아울러 50대라도 기존 ‘올드 제너레이션’ 편입을 거부하고 30~40대의 연장선상에서 라이프사이클을 유지하는 경우가 늘어나 정치적 성향 역시 보수화를 거부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보수정당 역시 50대를 60대 이상과 함께 묶어 반공과 국가주도 성장 등의 기존 보수 아젠다만 강조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으로 이어진다.

50대의 보수 동조화가 깨진 또하나의 문제는 다름아닌 ‘사람’이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보수 진영의 주류 세력이 급격히 노령화된 데 비해 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는 ‘386’들이 명실상부한 주류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당시 30대에 정치권에 들어왔던 이들은 문재인정부 들어 사회 곳곳에 전진 배치됐다.

안 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상징적 인물이다. 내년 8월 민주당 차기 당대표 선거에서는 그야말로 이인영·우상호·송영길 등 ‘86’ 세대 대표주자들이 당권을 놓고 경쟁해 50대 권력교체를 눈으로 확인시켜줄 참이다.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남경필·원희룡 지사를 제외하고 약진하는 50대 리더가 거의 없다. 50대인 한 대기업 대표이사는 보수에서 마음이 돌아서게 된 이유에 대해 “인물이 없지 않나. 이쪽(진보·민주당)에는 그래도 안희정이 있었고 김부겸 같은 인물도 있다”고 말했다. 50대가 보수화된 자신들을 대변해줄 리더를 굳이 기존 보수정당에서 찾을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의미다.





'큰 손'에게 버림받은 보수…"마음 둘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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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난해 12월9일 탄핵안 가결 전날까지 조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평균 지지율이었다. 소득 수준 중·상류층의 지지율이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6~8일 만 19세 이상 남녀 1012명을 조사(응답률 27%, 이하 오차범위 ±3.1%포인트)한 결과다.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알려진 소득 수준 상위 계층에게서 ‘보수의 아이콘’이 버려진 것이 숫자로 확인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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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차(지난 5월30일~6월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중·상류층의 문 대통령 지지율이다(1004명 조사·응답률 19%). 같은 조사에서 문 대통령 평균 지지율은 84%였다. 다른 소득 계층에서보다 새 정권에 대해 높은 기대감이 나타났다. 반면 실망도 빨랐다. 6개월이 지난 12월 1주차(지난 5~7일) 조사에서, 이들 계층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69%로 중하위·중위 소득 계층보다 오차범위 이상 낮았다(1005명 조사·응답률 17%).





전통적으로 부자들은 보수라는 인식이 있다. 자산가들이 몰린 ‘부자 동네’, 서울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는 각종 선거에서 보수 정당의 텃밭이었다. 19대 총선 때 강남 3구의 새누리당 득표율은 과반 이상(52%)이었다. 큰 돈을 만지며 투자해 돈을 버는 투자업계 ‘큰 손’들도 보수였다. 아직도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보수’이거나 ‘보수에 가까운 중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탄핵을 경험한 ‘큰 손’들은 달라졌다. 탄핵 이전의 ‘보수 정당’에 실망감과 배신감이 커졌다. 이들은 더 이상 옛 보수 정치인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보수는 궤멸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지하던 정당과 세력이 궤멸하니 마음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여의도의 한 금융투자회사 임원 A씨는 작년 이맘 때 대통령 탄핵을 떠올리며 “실망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탄핵 사태의 핵심이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A씨는 그러면서 단호하게 “새누리당이 무슨 보수냐, 영창 가야 될 사람들”이라고 분노하기도 했다. 그는 “그 사람들(보수 정치인)은 괴멸했다, 보수는 이제 없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임원 B씨도 “스스로가 진보보다 보수에 가까운 성향이지만 탄핵 사태가 나자 창피했다”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투자운용회사 임원 C씨 역시 1년 전을 떠올리며 “짜증났다”고 말했다. 그는 “최순실이라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한테 나라를 휘둘렸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파들이 마음을 붙일 만한 곳이 없다”며 “자유한국당인가 뭔가가 마음 붙일 만한 곳이냐”고 반문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문재인정부나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마음을 주기도 쉽지 않다. 이들은 문재인정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하나같이 의문을 가진다.

전문투자가 D씨는 “특히 산업정책 부분에 ‘물음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들어 혁신 산업 육성 등을 외치지만 홍종학·박성진 등 관련 분야 인사를 보면 ICT분야를 정부가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구호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C씨도 “전반적으로 기업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 문재인정부를 지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여당과 제1야당이 싫지만 그렇다고 탄핵 이후 생겨난 혁신 보수나 제3의 중도 노선 정당들에 마음 두기도 역시나 못미덥다는 반응이다.

A씨는 “유승민은 약하고 안철수는 이미지만 먹고 살다 끝났다”고 비판했다. 대선 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B씨는 “사실 우리나라에 진보·보수가 어딨겠느냐”며 “바른정당도 시도는 좋았지만 원내로 들어와야지 지금은 힘이 없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회의는 당연한 수순이다. C씨는 “오히려 대통령 탄핵 되고 정치권이 안 나서니 시장경제가 더 잘 흘러가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이들은 보수로서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오랜 시간 지켜온 보수 성향을 바꾸기엔 어렵지만 새로운 보수가 재건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A씨는 “보수들이 할 일은 제대로 된, 진정한 보수들이 목소리를 내고 보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이제는 진정한 보수를 할 깨끗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의 일곱기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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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몰락'은 하루아침 일어난 일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정부를 거치면서 '보수 시대의 종언'과 권력 이동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지난 2012년 저서 '정치의 몰락'에서 "보수의 일곱 기둥이 무너졌다"며 보수 권력의 붕괴 예후를 진단한 바 있다. 보수 권력이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떠받쳐온 일곱 개의 토대가 무너지는 동안 보수 세력은 무너져가는 기둥을 보수하려 하지도, 새로운 토대를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①지식인

보수 담론을 생산하며 지식 사회를 지배한 지식인이 사라졌다. 최근 10년 간 일어나는 세계사적, 문명사적 전환을 설명하려는 보수 지식인의 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고(故)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마지막으로 보수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는 일은 없어졌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 지식 사회의 권력은 이미 보수에서 진보로 이동했다.

②언론

종이신문의 쇠퇴와 함께 보수 언론의 여론 주도력이 현저히 약화됐다. 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졌다. 당장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워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보수 진보 인사를 비교해보라.

③기독교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보수 권력의 주요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미국과 한국을 잇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 영향을 발휘하는 데 한 몫 거들곤 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수 자체가 줄고 목사 등 개신교 인사들의 사회적 지위 추락으로 교회의 힘이 빠져버린 상태다.

④문화

문화 영역은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속성을 띄기 마련이다. 특히 민주화 이후 문화계에서 보수가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이는 문화 감수성이 강한 20~30대에 직접적으로 미치게 됐다.

⑤대기업

국가주도 성장 시대에 대

기업은 보수 권력의 지원 아래 성장하고 다시 보수 권력의 지지 기반을 이루는 강한 연결고리를 지닌 기둥이었다. 또 기업의 성장이 국가와 개인의 성장과 동일시되면서 기업에 대한 국민 정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총수 일가'의 승계 문제와 격차 해소 문제 등이 주요 사회 이슈로 부각되면서 기업, 특히 대기업은 '사회악'에 가까운 취급을 받아며 각종 규제의 필요성에 시달리게 됐다. 전통적으로 기업의 이득 보장에 서왔던 보수 권력 역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⑥권력기관

국가정보원과 검찰, 경찰, 국세청, 군대 등 권력 기관은 보수 권력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물리적 토대였으나 민주화 이후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이들의 권력 해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⑦정당(보수정당)

1990년대까지 정당은 사회 각 분야에서 훈련된 최고 엘리트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2000년대 들어 정치인 양성 메커니즘이 사라지고 정치적 훈련을 거치지 못한 '아마추어 정치인'들이 주를 이룬다. 이에 비해 진보 진영에서는 '386 정치인' 등 운동권에서 정치적 경험을 쌓은 이들이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태은 백지수 ,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기자 ujungs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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