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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원희복의 인물탐구]서울시장 출마 정청래 “막힌 서울을 걷고 싶은 소통의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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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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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처음에 이 난에 등장하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너무 ‘훌륭한 사람들’이 대상인 이 코너에 자신이 나오면 지면에 누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선인 이재정 의원도 나왔다”는 말에 “그렇다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지방강연에 방송·팟캐스트 출연으로 요즘 거의 ‘시사 연예인’ 수준으로 바쁘다.

그는 기자들 사회에서 조금 ‘밉상’이었다. 바른 말을 직설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때 여의도 정가에서 ‘바른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국회의원으로 그와 유시민 의원(전 복지부 장관)을 꼽았다. 그도 그런 시선을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요즘 TV 시사프로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JTBC 유시민의 <썰전>과 그가 출연하는 MBN의 <판도라>가 그것이다. <썰전>에 비해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제 엇비슷해졌다. 사실 두 프로는 콘셉트가 좀 다르다. <썰전>은 여러 이슈를 다루지만, <판도라>는 3개 주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정보와 웃음도 주는 콘셉트다. 작가가 아닌 내가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한다.(그는 준비한 자료뭉치를 잔뜩 가져와 보여준다) 전화 취재도 하고 꼬박 8시간 이상 자료를 준비한다. 내 개인에게도 많은 공부가 된다.”

그는 “출연료는 최상급 대우”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팟캐스트 <파파이스>, <정치 알아야 바꾼다>와 종편 <판도라>에 출연했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5번이나 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파파이스>와 <정치 알아야 바꾼다>가 중단되면서 좀 쉴 틈이 생겼다.

-정 전 의원의 강성 이미지는 17대 첫 국회에 들어와 보수언론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생긴 것 아닐까.

“우선 나의 부족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과 전쟁하다 보니 그 보수언론이 씌운 덫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부드러워졌다’는데 사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보수언론이 나를 다르게 비췄을 뿐이다.”

-철저한 검증 때문이라고 하지만 요즘 문재인 정부를 보면 감사원장도 임명하지 못하는(문재인 대통령은 이 인터뷰 다음날인 7일 감사원장을 임명했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느낌이다. 본인은 ‘임명직은 안 한다’고 선언했는데 정치인 생각은 바뀔 수 있지 않나.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이미 임명직을 안 한다고 선언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했고, 정동영·김근태 선배도 장관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긴 호흡으로 숲을 보고 가야 한다.”

-혹시 손혜원 의원이 마음을 바꿔 그 지역구에서 한 번 더 하겠다면 어떡하나.

“한 번만 하겠다고 했는데… 설마.”

-그렇다고 4년은 너무 긴 것 아닌가.

“서울시민이, 서울시 당원이 원한다면 서울시장에 도전하겠다. 경선은 권리당원 50%, 서울시민 여론조사 50%다. 언론에 처음 하는 얘기인데, 경선하면 내가 승산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개인기로 넘을 수 있지만 광역단체장 이상은 시대정신이 맞아야 한다. 당원과 서울시민이 요구하고 시대정신이 맞으면 출마할 수 있다.”

예상치 않은 의외의 발언, 아니 선언이다. 기자가 ‘손혜원 의원이 지역구를 돌려주지 않는다면’이라는 곤혹스런 질문에 대한 돌출 발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민주당 75만 권리당원은 물론 서울시민이 원하는 서울시장의 첫 번째 요건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누가 열심히 뛰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라며 “지난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항의한 촛불시위, 총선 기여도, 또 지금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누가 뛰고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의 이런 선언은 박원순 시장이 ‘3선 연임에 나서겠다’는 선언을 않은 지금, 최초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이 아닐까. 그는 “지난 8월 교통방송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1등, 이재명 2등, 내가 3등 했다”면서 “앞으로 민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31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서울시장 도전의사를 밝힌 후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서울시민 8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은 26.3%, 이 시장은 19.5%가 나왔다. 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는 정 전 의원은 4.6%의 지지를 얻었다. 이 성남시장은 경기지사로 목표를 바꿨고, 자신도 분명한 의사를 밝히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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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잘할 수 있겠나.

“자신감은 항상 있다. 서울시장이 갖춰야 할 제일 중요한 덕목은 서울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정성과 노력·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파악해야 서울시민이 원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 즉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 통하다보면 능력과 지혜가 나온다. 많은 사람의 얘기를 충분히 듣는 일은 10년 동안 한 일이다.”

-시장이 되면 어떤 서울을 만들고 싶나.

“핀란드에 가 13㎞를 걸었는데 참 편하더라. 국민대 이경훈 교수는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라는 책을 썼다. 서울은 다 막혀 있다. 서울역 전철 1호선 지상부분과 지하철 2호선 지상고가도 모두 지하로 넣어야 한다. 도시의 지상철도는 도시를 끊고 사람들 소통도 끊어 놓는다. 서울을 걷고 싶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

-서울시정에 관해 연구를 많이 한 것 같다.

“그냥 생각했다. 서울역 7017 고가공원은 애물단지라 생각한다. 어색하고 불필요한 구조물이다. 그리고 골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서울은 기와 혈이 막힌 도시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반발에도 의욕적으로 만든 서울역 고가공원을 ‘디스’하는 저돌성도 보였다. 그는 “그것에 비해 마포 연남동 ‘연트롤파크’가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연트롤파크는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기찻길 공원으로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빗대 그렇게 부른다. 원래 이곳을 지나는 경의·공항선은 아파트 2층 높이의 지상 2층 철도로 설계됐는데 자신이 이를 지하화하고 지상을 공원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총선 지지유세로 당내 우호적 세력은 물론 대중적 이미지에 심지어 ‘사조직’까지 갖추고 있다. 그는 컷오프(공천 탈락) 이후 전국적으로 94명의 후보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전국 유세장을 누볐다. 그는 “한 선거전문가는 3~5%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경합지역 20석을 건진 것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낙천자가 공천자를 지원한 정치권의 ‘신선한 선례’를 만든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청래당(정청래를 지키는 사람들) 전국대회를 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를 ‘흉내 낸’ 정치 팬카페로 ‘문사모’(문재인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1만5000여명에 이은 9000명이 넘는 회원을 자랑한다. 게다가 회원 대부분은 민주당 알짜 권리당원이다. 이날 전국대회에서는 유명 팟캐스트 김어준·정봉주를 비롯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축하했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는 지난해 5월 29일, 세월호를 기억하자며 유족과 시민 30여명이 동거차도에서 1박2일을 했다. 국회의원 상태에서 들어가 아닌 상태로 섬을 나왔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때 같이 간 사람들 사이에서 팬카페 얘기가 나왔다. 촛불시위에 같이 참가하려고 깃발과 팬카페를 만들었는데 회원이 급속도로 늘었다. 이들은 대선 때 선거운동 열심히 한 열성당원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 20명 중 17명이 우리 청래당 사람들이더라.”

자신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열성당원 모임이, 그것도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매우 큰 자산이다. 이렇게 열성당원이 모인 계기는 역설적으로 지난 총선 컷오프 때문이다. ‘박힌 돌’이던 그는 ‘굴러온 돌’ 김종인 비대위원장에게 공천 탈락 수모를 당했다. 정치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낙선이 아니라 낙천이다. 그는 낙천의 쓰라린 기억에 “음~” 하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컷오프 됐을 때 항의전화로 당 업무가 일주일 동안 마비될 정도였고, 호남에서 지지율이 급격히 꺾였다”면서 “내 페이스북에 ‘무소속으로 나가 본때를 보이라’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응원이 빗발쳤다”고 말했다. 그의 탈당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수도권 핵심 지지층이 이탈하면서 수도권 박빙지역 선거전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전 대표가 그에 대한 재심을 추진했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그것까지 막았다.

그는 당시 이런 현상에 대해 “국민이 나를 좋아한 것이라기보다 안철수 등 탈당파와 조·중·동이 문재인 당시 당대표를 비토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의 의정활동은 흠잡을 틈이 없었다. 거기에 세월호 단식과 테러방지법에 대한 11시간39분 필리버스터 기록까지 세웠다. 결국 당시 민심은 김 비대위원장의 부당함에 대한 반발이었다. 여기에는 그가 <팟캐스트>를 통해 꾸준히 국민과 소통한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그의 컷오프를 주장(박지원 의원)하고 시킨 사람(김 비대위원장)이 오히려 탈당, 개헌을 통한 ‘반문연대’를 도모하는 해당행위를 했다. 이에 정 전 의원은 두 사람의 저격수를 자임, 그 기도를 저지시켰다. 그는 지금도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여전히 추호 선생(그는 김 비대위원장을 이렇게 부른다)을 용서하기 어렵나.

“그분에게 감사하다. 굳이 그분과 승부를 내고 싶지도 않지만 결국 내가 이겼다고 본다.”(이후 비대위원장은 자신을 찾아 비굴한 태도로 사과했다고 한다)

-대선 전 정치 고단수인 김종인·박지원 의원의 반문연대를 저지한 것도 큰 성과다.

“그래서 박 의원이 나를 고소했다. 국회의원을 몰고 다니는 예전 기준에서 보면 박 의원이 정치고수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박 의원은 비난 문자폭탄 받고 대중으로부터 몰매 맞는 정치인일 뿐이다. 호남에서 ‘목기춘’(목포 김기춘)이라고 불릴 정도다.”

두 사람에 대해 맺힌 그의 ‘한’은 깊은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전 나란히 나온 TV프로에서 박지원 의원이 악감정을 드러낼 때 오히려 그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기자는 그런 그를 유심히 보며 ‘강한 절제력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 전 의원은 1965년 충남 금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다섯 형님·누님이 일찍 죽었다”면서 “집사람도 10남매의 막내인데, 처가는 형제 셋을 잃었다”고 말했다. 1984년 건국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89년 전대협 조국통일특별위원장으로 주한 미대사관저 점거농성 사건을 주도, 꼬박 2년간 실형을 살았다.

그는 1991년 감옥에서 정치를 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옥에서 일주일 동안 벽만 쳐다보며 고민하다 삶의 목표를 ‘분단극복 조국통일’로 정했다”면서 “이 일을 실현하는 지름길이 뭔가를 고민하다 정치를 하기로 하고, 10년 준비 끝에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진 이런 ‘개똥철학’ 때문에 탈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참 주도면밀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는 늙은 정치거물의 ‘비정상 낙천’에 젊음과 당당함으로 맞서 ‘즐거운 반전’으로 되갚는, 저급한 정치판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했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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