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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G2시대]'나도 당했다(ME TOO)' 침묵 깬 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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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각종 성추문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성폭행을 당하고 20년동안 침묵하고 살면서 너무 수치스러웠고 가슴에 가시가 박힌 듯했다. 이제 그들의 이름을 말해 부끄럽게 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자"

지난 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올해 여성 컨벤션대회에 가장 주목 받는 연사는 여배우 로즈 맥고완이었다. 맥고완은 이날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권력자들로부터 성적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당당히 앞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연설을 마친 뒤 불끈 쥔 주먹을 치켜 올렸다.

맥고완은 지난 달 5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과 성희롱 행적을 고발한 장본인이다.

NYT는 이기사를 통해 와인스타인이 수십년간 영화배우는 물론 여성 직원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러왔다고 보도했다. 맥고완과 함께 여배우 애쉴리 저드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직접 격었던 아픔을 증언했다. 이어 세계적인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와 귀네스 팰트로도 와인스타인에 당한 피해를 과감하게 고백,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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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하비 와인스타인


와인스타인은 영화사 '미라맥스'와 '웨인스타인 컴퍼니' 등을 직접 설립한 할리우드의 큰 손이다. 그를 통해 제작ㆍ보급된 영화들은 오스카 상들을 휩쓸었다. 그에겐 '오스카 제조기'란 별칭이 붙었고 영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허핑턴 포스트는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미국 지도층과 각별한 친분을 맺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와인스타인을 상대로 NYT가 폭로기사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자체도 놀랐다는 내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보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성폭행과 성추문 피해자들이 숨겨왔던 진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른바 '나도 당했다.(#Me Too)' 캠페인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CNN 등 미국언론들은 "그동안 감춰졌던 성추문이 드러나면서 미국이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특히 '영화산업의 메카' 할리우드에선 수십년간 감춰져왔던 거물들의 '성추행 과거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배우 케빈 스페이시의 몰락이 대표적이다. 배우 안소리니 랩이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스페이시는 자신은 양성애자였다면서 앞으로 동성연애자로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스페이시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남성들의 폭로가 잇따르자 넷플릭스측은 하우스 오브 카드 시리즈의 제작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할리우드의 원로배우 더스틴 호프만에 대해서도 두 명의 여성이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메릴 스트립은 자신이 25살 때 연극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더스틴 호프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 미투 캠페인 대열에 합류했다.

리즈 위더스푼은 자신이 16세 때 영화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위더스푼이 지목한 제임스 토백 감독은 위더스푼 이외에도 30명 넘는 여배우가 성추행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하고 나서면서 '제2의 와인스타인'이란 꼬리표를 달게됐다.

체육분야에서는 그동안 쉬쉬해온 래리 나사르 성추문이 터졌다. 나사르는 미국 체조대표팀과 미시간대학 등에서 팀 닥터로 일해오면서 체조선수들을 치료 명분으로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특히 올림픽에서만 3개의 금메달 땄던 체조 스타 앨리 레이즈먼이 방송에 직접 출연, 나사르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더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맥카일라 마로니도 13살 때부터 나사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론계는 지난 주 CBS 간판 앵커이자 수십년간 유명 토크쇼를 진행해온 찰리 로즈의 성추행 과거가 드러나면서 술렁거렸다. 지난 20일 로즈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8명의 주장이 제기됐다. 다음날 데이비드 로즈 CBS 회장은 "찰리가 뉴스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맞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그와의 계약을 전격적으로 해지해버렸다.

와인스타인 사건을 보도했던 NYT에도 불똥이 튀었다.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 글렌 트러쉬에 대한 성추문이 제기되자 NYT는 트러쉬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투자회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간부 2명은 여성 동료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 해고됐다 .또 노동계에선 스콧 코트니 전미서비스노동조합(SEIU) 부위원장이 여직원에 대한 성희롱과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고발로 직무가 정지됐다.

정치권도 성추행 과거사에 대한 폭로가 쏟아지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앨라배마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에 대해선 지난 1979년에 14세 소녀를 자택에 끌어들여 성추행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후 무어로부터 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당했다는 주장이 9건이나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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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AP연합뉴스]벌리 영 넬슨(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자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민주당의 기대주로 명성을 얻고 있던 앨 프랭컨 상원의원도 성추문에 휘말렸다. 라디오 방송 앵커인 리앤 트위든이란 여성은 11년전 방송작가 겸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프랭컨이 해외 미군 위문 공연 도중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프랭컨 상원의원은 당시 비행기 안에서 잠들어 있는 트위든의 가슴에 손을 올리는 포즈를 취하며 찍었던 사진까지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민주당 여성 중진인 린다 산체스 하원의원은 CNN 방송에 직접 출연, "몇년 전 동료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혀 정치권의 만연한 성폭력 사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최근엔 17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조 바튼 하원의원의 누드 사진과 음란 동영상도 온라인에 유포되고 있다.

올해 93세로 최장수 미국 대통령이 된 '아버지 부시'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측도 최근 부적절한 접촉과 음란한 농담 등을 했다는 폭로들이 제기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

미투 캠페인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저지른 '포식자'들을 처벌하거나 잘못된 관행을 제대로 바로잡기에 역부족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 인사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허위 주장일 뿐"이라는 말로 자신에 대한 고발을 무력화하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고발 여성들에 대한 법적 대응이나 뒷조사, 합의 종용 등의 수단도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와인스타인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출신의 사설탐정 등을 고용, 폭로 여배우와 기자들의 약점을 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간지 뉴요커는 웨인스타인이 고용한 사설탐정들은 여성인권운동가를 가장, 로즈 맥고언을 만나 녹음을 시도했으며 맥고언에 피해를 줄 정보를 찾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공교롭게 맥고언은 마약 소지 혐의로 버지니아 지방법원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지난 달 말 받았다. 이에 대해 맥고언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입을 막으려는 음모라고 반발하고 있다.

무어 후보는 자신을 둘러싼 성추문으로 사퇴 압력이 커지자 공식 기자회견을 자청, "제기된 주장들은 모두 허위"면서 "후보를 사퇴할 이유가 없으며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며 무어를 두둔하고 나섰다. 앨라매바 주 공화당 지도부도 무어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천명, 여론의 공분을 샀다.

돈으로 여성 피해자들의 입을 막아온 관행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미의회 현역 최다의원으로 성추문에 휘말린 민주당 존 코니어스 하원의원은 이미 수 차례 피해 여성들을 압박, 합의를 통해 무마해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편 코니 레이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지난 12일 열린 미투 캠페인 집회 연설을 통해 "직장내 성추행을 돈으로 합의해 입막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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