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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CCTV 속 귀순 북한 병사 ‘72시간 다리’ 질주…‘도끼만행사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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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북한 병사 cctv

동아일보

사진=차량으로 72시간 다리로 향하는 북한 귀순자. 유엔사 CCTV캡쳐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 1명이 차량을 몰고 건넌 ‘72시간 다리’가 주목받고 있다.

유엔군사령부의 채드 G 캐롤 공보실장은 22일 북한군 귀순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북한 차량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72시간 다리’를 건너 이동함에 따라 주변 건물에서 일부 북한군 병사들이 뛰어 나온다. 차량 운전자는 빠르게 이동하여 ‘72시간 다리’를 건넌다. 김일성 동상이 북한 공동경비구역 투어가 시작되는 지점인데, 이 지점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넘으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캐롤 공보실장이 여러 차례 언급한 ‘72시간 다리’는 1976년 8월 18일 이른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폐쇄되면서 북측이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길이 막히게 되자 새로운 통로로 만든 다리다. 다리 건설에 72시간이 걸렸다고 해서 ‘72시간 다리’라고 명명됐다고 한다.

‘도끼 만행 사건’으로 알려진 참극이 빚어진 건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경. 유엔군 측 장교와 경비병들은 5명의 한국노무단(KSC) 소속 노동자들을 데리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에 있는 유엔군 측 사령부 제3경비초소 근처로 갔다. 이곳에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기 위해서였다. 한여름 무성한 미루나무 잎 때문에 유엔군 측 전망대에서 북한군 동향을 제대로 관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5년생 미루나무의 높이는 15m나 됐다.

작업반원 3명이 미루나무에 올라가 나뭇가지를 대여섯 개 치고 있을 때 북한군 장교 2명이 느닷없이 다가와 ‘더는 가지를 치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작업을 감독하던 남측 장교인 김문환 대위가 미군 인솔 장교인 보니파스 대위에게 통역하는 사이에 북한군 장교들은 “더 치면 죽여버린다”는 평안도 사투리로 고함치며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북한군 장교 2명과 사병 30여 명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다 나무 밑에 놓여 있던 도끼와 삽, 곡괭이 등을 집어 들고 벌 떼처럼 유엔군을 습격했다.

이 공격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릿 중위 등 미군 장교 2명이 현장에서 피살됐으며, 카투사 5명과 미군 병사 4명 등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남측 유엔군 제3초소는 완전히 망가졌고, 유엔군 소속 차량 3대도 파손됐다.

전군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김일성이 21일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유엔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JSA 내에 군사분계선(MDL)을 그어 남북이 서로 넘지 못하게 했고, 53년 정전협정 때 포로를 교환했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폐쇄했다. 북한은 이 다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자 ‘72시간’ 만에 다리를 다시 세웠고 이 다리가 현재의 ‘72시간 다리’다.

한편 유엔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귀순한 북한 병사는 ‘72시간 다리’를 건넌 후 MDL 쪽으로 접근하려다 차량 바퀴가 배수로 턱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자 차량에서 내려 남측으로 내달렸다. 이 때 북한군은 총격을 가하며 쫒아왔는데, 북한군이 MDL 너머로 총격을 가하고 병사 1명이 잠시나마 MDL을 넘은 사실이 확인됐다.

유엔사는 “이는 두 차례의 유엔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면서 “JSA내 유엔군사령부 인원이 판문점에 위치한 연락채널을 통해 오늘 이와 같은 위반에 대해 북한군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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