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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페미니즘 소설집, 남자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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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출간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등

여성작가 7명의 도발적 시선

“악플과 비판 받을 각오로 썼다”

중앙일보

현남 오빠에게


남성들은 불편해하고 여성들은 반길 책. 표지에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못 박은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얘기다. 지난해 문단 내 성폭력 사건 등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시점에 나온 기획소설집인데, 7명 참가 작가의 면면이 화려하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 페미니즘 작가처럼 돼버린 조남주(39), 베스트셀러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41), 최근 대산문학상을 받은 손보미(37)가 눈에 띈다. 김이설(42)·김성중(42)·최정화(38)·최은영(33), 어떤 선집에 끼어도 이상하지 않을 작가들이 가세했다.

조남주의 단편 『현남 오빠에게』의 마지막 문장이 특히 도발적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것처럼 보이는)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10년 동안 꼭두각시 삶을 살았던 여성이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내용인데, ‘강현남, 이 XXX아’라는 욕설로 끝맺는다. 13일 기자간담회에 조남주·김이설·최정화가 나왔다. 세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토크’를 정리했다.

중앙일보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을 함께 낸 여성 작가. 김이설씨. [사진 다산책방]




Q : 각자 작품 소개를 한다면.



A : ▶김이설(이하 김)=내 소설 『경년(更年)』은 ‘갱년기(更年期)’의 ‘갱년’과 한자가 같다. 사춘기 자녀를 바라보는 40대 여성이 이전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여성의 목소리, 페미니즘 이슈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조남주(이하 조)=『현남 오빠에게』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여성의 편지글 형식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교정하려 하고, 교정 당하는 관계는 꼭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에 해당하는 상황인데,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의 자아를 흔들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 현실을 소설에 그렸다.

▶최정화(이하 최)=『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모순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뜨거운 화두를 다룬 소설집이라 설레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중앙일보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을 함께 낸 여성 작가들. 조남주씨. [사진 다산책방]




Q : 주제가 민감해 소설 쓰기 어려웠겠다.



A : ▶최=부담이 컸다. 소설을 쓰면 대개 작가가 드러나는데, 내 안의 여성혐오, 여성을 억압하는 생각이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보다 적극적인 발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지금 내 모습, 여성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질문하는 형태가 됐다.

▶조=방송사 작가 시절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취재한 적이 있다. 중학생 딸을 둔 분이었는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결혼 초기부터 딸과 함께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나는 당시 스물세 살이었다. 그런 피해자는 왜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오래 품게 됐다. 피해 상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김=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을 키우며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던 차에 소설 청탁을 받았다. 아래 세대와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소설을 썼다. 선동하는 전사의 역할을 한 게 아니고, 당신만 겪는 게 아니라 우리도 겪는다, 그런 목소리를 낸 거다. 누군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으니…. 한국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는지 귀 기울여 주십시오, 하는 의미다.


중앙일보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을 함께 낸 여성 작가. 최정화씨. [사진 다산책방]




Q : 독자들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



A : ▶최=내 소설집 나왔을 때보다 이번 소설집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조=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표지에 인쇄된 책에 달릴 악플과 비판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밤새 마음 졸이며 소설을 쓰고 있을 여섯 명의 작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나 혼자 이러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다른 작가들도 어디선가 잠 못 이루고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출판사에서 특별히 조율하지 않았는데도 7편의 소재나 스타일이 너무 달라 흥미로웠다.

▶김=소설집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남자들과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좋겠다.




Q :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이 있을까.



A : ▶김=남편이, 내 소설을 읽으면 자신이 나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실은 나 자신도 과연 페미니즘적 인간인가 고민이 많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건 작가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수의 목소리에서 정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조=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다. 여성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소설을 쓰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다.

▶최=페미니즘 교육이 시급하다. 여성조차 스스로가 처한 불평등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대안적 삶, 그 삶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 또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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