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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단독]“죽을 각오” 서명에… 삐뚤삐뚤 한글이름-아무개 妻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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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4명 ‘성명회 선언서’ 발견 <上>

동아일보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러시아 연해주에서 결성된 성명회의 선언서에는 8624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록이 112장을 차지한다. 첫 장(1번 사진)엔 성명회를 이끌었던 유인석 이범윤 김학만 이상설(위 왼쪽) 등 성명회 지도자들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셋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의 서명이 담겼으며, 이름 한자를 몰라 한글로 이름을 남긴 이들(두번째 사진)도 있다. 3번 사진은 이상설 선생. 김광만 PD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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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진정한 대한인은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훌륭한 필체도 적잖으나, 붓놀림이 낯선 듯 조악한 글씨가 상당하다. 한자 이름을 몰라 한글로 쓴 이름에, 부녀자라 차마 밝히기 쑥스러웠는지 ‘누구의 처(妻)’란 서명까지. 하지만 한 목소리로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내 조국을 찾고 싶다”고.

고종의 ‘헤이그 특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을 맞는 올해, 1세기가 넘어서야 후손들에게 친견을 허락한 ‘성명회 선언서’는 뜨겁다 못해 구슬픔이 배었다. 1910년 8월 강제병합이 전해지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학교에 모인 한인들은 ‘성명회’를 결성하고 사흘 뒤 성명서 초안을 완성했다. 그리고 두 달 뒤, 8624명이란 전대미문의 인원이 참여한 성명서가 미국 땅으로 보내졌다.

○ 무기를 들고 끝까지 싸우리라

이상설이 집필하고 유인석이 다듬은 것으로 알려진 선언서는 성명회 조직 후 첫 사업이었다. 성명회는 독립운동을 위해선 서구 열강의 인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이 때문에 일제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음을 규탄했다. 선언서는 당시 국제외교계의 공식 언어였던 프랑스어로 쓰였다. 이상설 선생은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7개 언어를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인들이 범한 행위는 문명의 관념은 조금도 없이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위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가장 사나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명서는 세계 열강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비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의를 두둔하려 귀하들의 명예와 영광을 이룬 원칙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당히 훈수했다. 그리고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서겠노라 맹세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광복과 국권 회복에 기필코 도달할 때까지 손에 무기를 들고 일본과 투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차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정한 한국인은 자신의 자유와 나라의 광복을 획득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겠습니다.”

이석형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장은 “이상설 유인석 선생 등은 구한말부터 곧은 절개를 지켰던 선비의식이 투철했던 독립운동가”라며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투신하겠다는 숭고한 의지가 성명서에 담겼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1910년 당시 러시아 연해주 한인촌 모습. 김광만 PD 제공


○ 광복의 염원이 기적을 이루다

성명회 선언서가 더욱 가치를 지니는 건 무려 8000명이 넘는 동포가 동참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렇게 많은 이가 서명한 선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1910년경 연해주 거주 한인은 대략 5만여 명. 당시 1가구가 5∼6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한인 가구 수는 1만 가구 안팎이었다. 박환 교수는 “주로 집안의 가장이 서명했을 걸 고려하면 연해주와 그 인근 모든 동포가 참여한 셈”이라며 “통신수단도 변변치 않던 시절 한두 달 만에 이런 인원을 모은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놀라운 건 선언서가 당대 정파나 사상을 초월했다는 점이다. 서명록엔 훗날 대한독립군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을 비롯해 김치보 유진율 이갑 등 다양한 면면이 눈에 띈다. 당시 연해주는 계파 분열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일반 백성도 고려인파 경성파 함경도파 평안도파 등으로 갈라져 물리적 충돌도 벌어졌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성명회 선언서는 일시적이긴 했으나 신분과 이념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물”이라며 “조국의 독립이란 깃발 아래 모든 이해관계를 뒤로 하고 하나로 뭉친 쾌거”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정양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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