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법원 판단 남아있지만 상당수 대학들, 노동권 보장안해
조교제도 운영에 큰 파장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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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식(보광 스님) 동국대 총장이 조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퇴직금과 연차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대학 총장이 조교 관련 노동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다른 대학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한 총장을 근로기준법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서울노동청은 조교가 대학원생 신분이더라도 교직원과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대학 측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근로(일)’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받은 장학금 역시 근로의 대가인 만큼 ‘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대학 조교는 교직원과 같은 행정업무를 하는 행정조교와 교수 연구를 보조하는 연구조교로 나뉜다. 국립대는 대학원생인 학생조교(연구조교)와 행정업무를 하는 비학생조교(행정조교)로 구분하지만 사립대는 연구조교뿐만 아니라 행정조교 역시 대학원생인 경우가 많다. 또 연구조교들도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타임 식으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고용부는 사립대 조교가 대학원생이고 단시간 근무만 하더라도 대학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사실상 교직원과 동일한 행정업무를 하면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행정해석을 지난해 6월 내렸다. 하지만 대학 조교는 기간제법 보호를 받지 않는 예외 직종에 포함돼 있어 근로자로 2년을 넘게 근무해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無)규직’으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12월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는 조교 458명을 대표해 “조교 업무가 교직원 업무와 다르지 않은데도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며 한 총장과 임봉준(자광 스님) 법인 이사장을 서울노동청에 고발했다. 사실 조교의 노동권 문제는 동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갈등이 있는 많은 학교들은 조교와 학교 측이 협의를 해 그때마다 장학금을 추가 지급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을 해왔다. 하지만 동국대는 2015년부터 이어진 총장 퇴진 운동과 맞물리면서 당시 총학생회가 조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대학 본부와 총장을 고발했고 형사사건으로 번지게 됐다.
결국 동국대는 올해 3월부터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행정조교를 근로자로 채용하고 퇴직금과 연차·주휴수당 등을 법률대로 지급하고 있다. 서울노동청 관계자는 “동국대가 요구를 받아들인 후에도 고발인들은 고발을 취하하지 않았다”며 “동국대 정관상 법인 이사장은 사용자로 인정할 수 없어 송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국대 측은 이날 “고발 이후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현 대학원 총학생회와 상호 협력해 조교의 근무시간과 업무 범위 준수, 인권침해 행위 금지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법원 판단이 남아 있지만 이번 조치는 다른 대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희대 관계자는 “행정조교는 몇 년 전부터 직원으로 모두 편입시켜 현재 행정업무를 하는 조교는 학교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전일제(주 40시간 이상)로 일하는 조교 역시 지금도 대부분 근로자로 인정된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조교나 연구조교 등은 적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 장학금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마다 선발과 운영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조교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근로자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파트타임 조교에 대해서도 4대 보험 가입이나 퇴직금 지급 등이 의무화되면 대학들의 재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원생 조교의 근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성열 ryu@donga.com·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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