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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자유 억압한 레닌식 공산주의에 반감… ‘푸틴 장기독재’ 지적엔 “동의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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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푸틴 후배 대학생들 만나보니

동아일보

18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 다니던 알렉산드르는 황제 암살 모의에 가담한 혐의로 처형됐다. 이 사건은 당시 열일곱 살이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마음에 혁명의 불씨를 댕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레닌은 3년 뒤 형이 다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법대에 입학했다. 현재 러시아를 이끌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모두 이 대학을 졸업했다.

3일 오전 레닌과 푸틴의 후배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언론학부 학생 3명과 대학 도서관에서 만나 2시간 30분 동안 혁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학과 발콥스키 니콜라이 루키야노비치 교수도 함께했다. 혁명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3명 모두 자유를 억압한 레닌의 공산주의에는 반감을 갖고 있었다. 미디어언론학과 3학년 사비나 씨(22·여)는 “당시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본인의 고향으로 꼭 돌아가서 일을 해야만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제언론학과 4학년 마르크 씨(23)는 “또래 중 공산당 지지자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언론학 박사과정 중인 알렉산드르 마르첸코프 씨(28)는 “1960년대 이전 세대는 소련 때의 사상과 이념 아래 교육을 받아 사회주의에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종주국 러시아조차 더 이상 학교에서 사회주의를 미화하는 일은 없다. 참석자들은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4개월 동안 러시아 혁명만을 별도로 배우지만 매우 중립적으로 교육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마르첸코프 씨는 “고교 때 ‘1917년의 일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했고 두 시각 모두 배웠다”고 말했고, 사비나 씨는 “국사 교사가 공산당원이었는데도 혁명의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공정하게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최대 고민은 취업이다. 기자가 한국 청년들도 마찬가지 고민을 갖고 있다며 자기소개서 100개는 기본이라고 말하자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웹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비나 씨는 “우리는 기껏 5개 정도 쓴다. 처음부터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적다”고 말했다.

소련과 공산주의 우방 국가인 북한으로 화제를 옮겼다. 마르크 씨는 “북한에 대해 잘 모른다. 눈에 띄는 교류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비나 씨는 “북한을 아예 모른다. 우리 친구 모두 그렇다”며 “하지만 한국은 너무 좋아한다”며 웃었다. 그는 “이 손가락 하트 모양 맞죠?”라며 엄지와 검지로 ‘한국식 하트’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또 다른 장기 독재를 하고 있다는 지적에 사비나 씨는 “러시아 국민은 푸틴 이외에 정치를 할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며 동의하지 않았다. 마르크 씨는 “푸틴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전환의 혼란을 겪고 안정화된 현재의 러시아 정치와 경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라고 표현했다. 루키야노비치 교수는 “러시아 국민은 혁명에 지쳤기 때문에 푸틴의 안정적인 체제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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